삼성전자 부장·과장 사라진다…빠르고 가벼운 ‘이재용호’ 탄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7일 1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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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47년차, 직원 수 30여만 명인 삼성전자가 가볍고 빠른 실리콘밸리 식 ‘스타트업’ 조직문화로 변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27일 발표했다. 사원부터 부장까지 7단계로 나눠져 있던 직급을 4단계로 단순화하고 수평적 소통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게 핵심이다.

올해는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며 ‘신경영 삼성’을 선언한 지 23주년이 되는 해. 당시 제조 부문 혁신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가 이번 ‘인사·기업 문화 혁신’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여기에 재계 1위 기업 삼성전자의 변화는 조만간 재계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수직적 조직 문화 없애겠다.”

삼성전자는 우선 부장, 과장, 사원 등 수직적 직급 개념을 직무 역량 발전 정도에 따라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로 전환한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직급을 CL1~CL4 로 단순화한다. 임직원 간 공통 호칭은 “OOO님”으로 통일한다. 부서 내에서 “프로” “선후배님”이나 영어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호칭부터 개선해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자유롭게 나눈 아이디어는 빠른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고 문화도 개선한다. 사원이 대리에게 대리가 과장에게 보고하는 릴레이 보고 대신 팀원이 팀장에게 직접 보고도 가능하게 했다. 보고 방식도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e메일 등으로 간결하게 내용만 전달하게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상사 눈치를 보며 퇴근하지 않는 눈치성 잔업 등 불필요한 잔업·특근을 없애고, 연간 휴가계획도 자유롭게 짤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인사제도는 내년 3월부터 시행한다.

● 빠르고 가벼운 ‘이재용호’ 탄생

삼성전자의 이번 도전은 상명하복식 관료주의를 버리지 않고서는 빠르게 재편되는 글로벌 산업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가볍고 신속한 의사결정과정과 평등한 조직문화를 통해 직급보다는 능력, 명령보다는 소통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창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등장한 스타트업들이 불과 1, 2년 사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하드웨어, 제조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들을 소프트웨어 능력으로 무너뜨리며 산업 구조를 재편 중이다. 이미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 숙박 공유 서비스 애어비엔비 등은 자동차나 호텔 하나 없이 전통 글로벌 회사들의 기업 가치를 역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형식만 바뀐다고 삼성전자가 곧바로 스타트업 문화로 바뀔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삼성전자는 3월 ‘스타트업 삼성 컬쳐 혁신’ 선포식 당시 사회자가 “스타트업 삼성!”이라 외치면 젊은 직원들이 손에 찾던 전구팔찌에 불을 켜 ‘스타트업’이란 글자를 보이도록 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새로운 조직 문화를 만들자는 자리에서 기존 관료주의에 물든 보여주기 식 집단행동을 펼친 것이다.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형식만 바뀐다고 기업이 갖고 있던 문화나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며 “오랫동안 고수해온 ‘톱다운 매니지먼트인’ 경영방식부터 타파해야 조직문화 혁신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재계로 번지는 기업문화개선

국내에서도 이미 CJ, SK텔레콤, KT 등 삼성에 앞서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에 나선 기업들이 상당 수 있다. LG전자는 올 1월 임직원 스스로 사내 게시판에 조직 문화 관련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우리 틉시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3월에는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황호건 LG전자 최고인사책임자(CHO)가 평가 방식 전환(상대평가→절대평가), 임직원 전문성 강화, 유연 출퇴근제 및 팀장 없는 날 도입 등의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의 ‘맏형’격인 삼성전자의 변화는 재계에서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다. 또 국내 대기업들의 만성적인 고민인 ‘항아리 형’ 인력구조(사원, 대리는 적고 차장 부장만 많은 상황) 해결과 맞물려 재계 전반의 조직 문화 개선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 개편은 결국 ‘연령 위주’가 아닌 ‘직무 위주’ 인사 제도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수 있다”며 “다른 기업들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만큼 삼성을 모방한 제도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덕기자 drake007@donga.com
서동일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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