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처칠의 꿈… 英, 美와 동맹관계 강화할 듯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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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XIT/英 EU 탈퇴 글로벌 쇼크]브렉시트 찬성한 영국 유권자수 1741만742명
유럽과 결별 고립주의 선택… ‘리틀 잉글랜드’로 추락 우려도
캐머런 “탈퇴협상은 새 총리가”… 존슨 前 런던시장 차기 총리 부상

“우리는 오늘 아침 전혀 다른 나라에서 깨어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칼럼니스트 조너선 프리들랜드의 24일 칼럼 제목이다. 1946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우리는 유럽합중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지 정확히 70년 뒤 영국은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대륙과 이혼을 선언한 섬나라 영국이 ‘리틀 잉글랜드’로 쪼그라드느냐, 아니면 ‘대영제국 영광의 길’을 되찾느냐의 기로에 섰다.

EU 탈퇴 진영이 역설하는 ‘더 번영할 영국’의 외교적 파트너는 가까운 유럽 대륙보다 미국, 호주와 같은 전통적인 양자 동맹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EU에서 빠져나오면서 우려하는 러시아와 테러에 대한 공백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협력으로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 내에서 영국의 위상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한승 단국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영국은 나토와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로 전통적인 외교노선인 ‘영예로운 고립(Splendid Isolation)’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향후 국제정치적인 영향력 유지에 큰 우려를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영국의 앞길에는 당장 리틀 잉글랜드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EU에 우호적인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 움직임이 현실화될 경우 영국은 전체 면적의 53%에 불과한 잉글랜드로 확 쪼그라든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독립당 대표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새로운 국민투표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EU 탈퇴 진영은 “영국은 매주 EU에 3억5000만 파운드(약 5940억 원)를 퍼주고 있다. 그 돈으로 세금을 줄이고 복지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당장 영국 수출의 44%를 EU가 차지하고 일자리 300만 개가 EU 교역과 연관돼 있다. 영국 재무부는 향후 2년간 영국 주택 값이 10% 떨어지고 파운드화 가치는 12%나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신규 실업자는 52만 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은 유럽 제국들과 자유무역은 하지만 이동의 자유는 제한하는 ‘미국과 캐나다 모델’을 꿈꾸고 있다. 남궁곤 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학)는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시작해 진화해 온 ‘유럽 통합’의 세계사적 흐름을 되돌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국내 정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다. 거대 양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의 수장(首長)이 한목소리를 내고도 브렉시트를 막지 못해 정치적 리더십은 공백 지경이다.

국민들이 EU 탈퇴를 결정하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0월 전에 총리직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개표 결과가 나온 후 연설에서 “영국민들은 (내가 제시한 방향과 다른)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 방향을 잡아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새 총리가 올 때까지 EU와 탈퇴를 위한 리스본 조약 50조 협상도 시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탈퇴 절차를 이끌 새 총리는 탈퇴 진영에서 나올 수밖에 없어 자연스레 ‘더벅머리’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에게 눈길이 쏠린다. 한때는 EU 잔류파에 가까웠던 그는 올해 2월 전략적 판단 아래 옥스퍼드대 동문 ‘절친’인 캐머런 총리에게 등을 돌리고 브렉시트 진영을 이끌었고 급기야 영국의 운명을 바꾼 주역이 됐다. 그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여전히 EU의 일원이며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영국 경제에 걸맞은 법과 조세 제도를 정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포스터를 내걸어 “인종주의와 증오를 증폭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브렉시트를 주도한 극우 성향의 영국 독립당 당수 나이절 패라지의 행보도 관심이다.

동정민 ditto@donga.com·김수연 기자
#브렉시트#신고립주의#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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