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靑·친박, 失政 면죄부 받으려 ‘반기문 꽃가마’ 태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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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어제 유엔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입국 직후 대선 출마를 강력히 시사했던 데 대해 “내용이 과대 확대 증폭된 면이 없지 않다”고 거듭 불을 껐다. 그러면서도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제가 결정해야 한다”며 대선 출마에 대해선 여전히 안개를 피웠다. 그는 ‘이번 방한이 정치적 행보와 무관하다’고 했지만, 5박 6일의 방한 행적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로 국민 뇌리에 각인된 것이 사실이다.

임기가 7개월이나 남은 유엔의 수장으로서 모국 대선 출마 여부를 언명(言明)하기 어려운 처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아무리 비공개라지만 언론인 모임에서 국내정치 관련 발언을 쏟아놓고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반 총장의 별명인 ‘기름장어’를 연상케 한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28일 반 총장과 30분 독대한 뒤 “비밀 얘기만 나눴다”고 했는데 만남 자체가 ‘충청 대망론’을 겨냥한 국내정치용이다. 둘이 나눈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 중앙일간지가 반 총장 방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대선주자 지지도는 28.4%로, 문재인(16.2%) 안철수(11.9%) 박원순(7.2%)을 압도했다. 과거 ‘안철수 현상’처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반영된 결과다. ‘통합의 리더십’을 말하는 반 총장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와 친박계가 작정한 듯 ‘반기문 띄우기’에 나선 모양새는 영 볼썽사납다. 친박계는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대권후보로 모시려는 기대가 강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29일 반 총장의 안동 방문에는 청와대가 아예 헬기까지 제공하는 최상의 예우를 했다. 항간의 ‘충청+TK(대구경북) 연합’ 시나리오가 연상될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 총장과 연(緣)이 닿는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이나 윤여철 의전비서관을 중용할 때부터 후계구도론이 청와대 안팎에서 나왔다. 이에 화답하듯 반 총장은 어제 “박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에 농촌 개발과 사회경제 개발에 기여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과 새마을운동을 치켜세웠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경제 안보 복합 위기에다 내부 분열의 삼각파도에 휘청거리고 있다. 총선 참패 이후 청와대와 친박이 ‘계파 해체 선언’을 하고 국정운영 스타일을 확 바꿔도 시원찮은 터에 섣부른 ‘대권놀음’이나 하다가 배가 난파할까 걱정된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시급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 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하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집권세력이 반기문 후계구도를 구축해도 실정(失政)의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현직 대통령의 후계구도 구축은 뜻대로 된 적이 드물고 어쩌다 성공해도 뒤탈이 났다. 전두환은 노태우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 갔고, 김대중도 노무현의 대북송금 특검의 칼에 베이지 않았던가.
#반기문#대선 출마 부인#충청 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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