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적자금 먹튀’ 파렴치 회장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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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방패’로 저택 지키고… 대형로펌 호위 받으며 빚탕감

《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1조2199억 원의 공적자금을 받은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이 지난해 3월 자신의 배우자를 전면에 내세운 건설사를 통해 경남 창원시 임대아파트 사업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자금 2조6266억 원이 투입된 성원건설의 전윤수 전 회장은 해외 지사를 통해 회삿돈을 아들에게 불법 송금해 부(富)를 대물림했다. 국민의 혈세(血稅)로 부실을 막은 일부 기업주들이 국가에 빚을 갚아야 할 의무를 도외시한 채 재산을 교묘히 빼돌려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것으로 동아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
 

▼ ‘공적자금 먹튀’ 회장들의 행태 ▼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공적자금을 들여서라도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정부는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168조7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는 분식회계 횡령 사기대출로 대한민국 경제를 멍들게 한 부도덕한 기업이 있다. 이 기업의 오너들은 재산을 친인척 명의 등으로 은닉해 정당한 공적자금 회수를 방해하고 대형 로펌의 도움을 받아 경영권을 유지하고 처벌도 교묘히 피해나갔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법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불교 방패’로 재산 지키기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지 3970㎡(약 1200평) 상당의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의 자택. 시가 200억 원이 넘는 이곳은 조계종 통도사 명의로 돼 있어 국가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서울 성북구에 있는 대지 3970㎡(약 1200평) 상당의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의 자택. 시가 200억 원이 넘는 이곳은 조계종 통도사 명의로 돼 있어 국가로 환수하지 못하고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26일 서울 성북구의 한 저택. 3970m² 대지에 건물 세 채가 들어선 이 저택에는 김성필 전 성원토건 회장이 살고 있다. 1998년 부도 직후 명의를 ‘조계종 통도사’로 바꾸고 대문에 ‘연화사’라는 사찰 문패를 달았지만 실제로는 스님이 아니라 김 전 회장 부부가 살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성북구의 저택은 사찰이 아닌 주택으로 등록돼 있었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위기 무렵인 1997년 자신이 대주주인 한길종금과 경남종금을 통해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10개 계열사가 4200억 원을 불법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김 전 회장 스스로 회삿돈 200억 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정부가 두 종금에 투입한 공적자금은 1조2199억 원에 이르지만 현재 김 전 회장과 성원토건 등으로부터 회수한 돈은 6547억 원에 그친다. 김 전 회장은 횡령 및 배임 등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재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3월 김 전 회장의 부인 하모 씨는 경남 창원시 임대아파트(1430채) 사업 인허가를 받았다. 이 사업부지 80%의 소유권은 하 씨와 하 씨가 대표인 해원건설이 갖고 있다. 재산 은닉 의혹이 일고 있지만 하 씨는 “창원 땅은 남편과 아무 상관이 없다. 빚을 내 샀다. (남편의) 복역으로 모든 처벌이 이뤄진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건설사를 인수합병(M&A)하면서 주변인에게 “캐나다, 홍콩에 숨겨둔 자산이 많고 골드바 몇 개면 50억∼60억 원은 금방 마련한다”고 재력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국내 최초 사적화의로 경영권 사수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은 ‘창의적인 법망 피하기’로 회사 빚을 공적자금으로 충당한 대표적인 ‘먹튀 회장’으로 꼽힌다.

성원건설은 1990년대 연매출 4000억 원에 달하던 중견 건설기업이었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부도를 낸 뒤 ‘사적화의’를 신청해 가까스로 경영권을 사수했다. 사적화의는 기업이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법원 중재로 일정 채무를 탕감해주는 변제 협정이다. 대형 로펌 변호사들의 활약으로 당시 화의가 받아들여져 성원건설과 계열사인 성원산업개발은 각각 3381억 원, 1335억 원 등 4700억여 원의 채무를 면제받았다.

이후 전 전 회장의 행보는 무책임했다. 전 전 회장 부부는 회사가 또 한 번의 부도 위기에 놓였던 2011년 5월, 123억 원에 이르는 직원 임금을 체불하고 회사 자산인 골프장을 팔아 도피자금을 마련해 미국으로 달아났다.

그는 또 2010년 영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의 명문 사립고 진학을 위해 회삿돈 10억여 원을 학교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동아일보는 전 전 회장 부부가 자신들이 거주했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한 고가 빌라(감정가 10억 원 상당)를 미국에 도피 중이던 지난해 8월 아들 이름으로 바꾼 사실도 확인했다. 전 전 회장의 아들은 앞서 12세이던 2006년 성원건설 주식 19.45%(평가액 250억 원)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올라서기도 했다.

한편 검찰은 전 전 회장이 받고 있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가 미국에선 범죄인 인도 요청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이 부부의 송환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그의 부인인 조모 씨가 서울행정법원에 낸 여권발급제한 처분 취소소송이 최근 기각돼 전 씨 부부는 조만간 미국 법원의 추방 심사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공적자금 회수 법 제도 정비 시급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12월 검찰, 국세청, 관세청, 예금보험공사(예보) 합동으로 공적자금비리 특별수사본부를 꾸렸고 4년 동안의 추적 끝에 2005년 비리사범 290명을 적발했다. 김 전 회장과 전 전 회장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들은 비리사범 중에서도 재산 은닉에 가장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예보 관계자는 “환수 대상자의 재산이 새롭게 드러나면 즉시 행동에 나서지만 배우자나 친인척 명의로 돼 있으면 환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업 오너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도록 기업구조조정 관련법에 오너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적시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부인, 자녀 등 경영에 참여한 친인척 등에 대해서는 재산 변동을 수시로 정밀 조사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김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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