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체제 선전에 동원된 월북 주한미군의 아들들 “미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6일 16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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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월북한 주한미군 병사가 북한에서 낳은 아들들이 재미 친북 매체인 ‘민족통신’과 평양에서 인터뷰를 갖고 북한이 사회주의 천국이라고 찬양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재미 친북매체인 민족통신이 온라인에 공개한 인터뷰를 소개하며 “월북 미군의 아들들이 북한 체제 선전 스타가 됐다”고 25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1962년 월북한 제임스 드레스녹 시니어 주한미군 일병(75·북한명 홍철수)의 두 아들인 테드 드레스녹(37)과 제임스 드레스녹(36)이다. 각각 홍순철, 홍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이들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고 둘 다 평양외국어대를 나왔다. 인터뷰를 진행한 인물은 북한 최고상인 김일성상까지 수상한 미국 국적의 민족통신 운영자 로길남 씨이다.

두 아들의 답변은 예상한 대로였다.

“김정일 동지의 자애로운 보살핌 아래 학교를 마쳤다. 아버지의 월북은 옳은 선택이었다.” “미국에게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미국은 나쁜 짓들을 충분히 저질렀고 이제 그들이 환상에서 깨어날 시기가 왔다.”

이런 뻔한 대담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백인 청년이 북한 군복을 입고 인터뷰에 출연해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이색적 모습과 가족사이다. 첫째인 테드는 사복을 입고 나왔다. 그는 자신을 북한 군관학교 교원 겸 배우라고 소개했다. 둘째 제임스는 상위(대위와 중위 사이) 계급의 북한 군관복을 입고 인터뷰에 응했다.

둘 다 영어가 유창하고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가능하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이들이 일하는 곳은 미국을 상대하는 군부기관으로 추정된다. 즉 테드의 직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정찰대학 교원, 둘째는 미군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는 정찰총국 적공국(적군와해공작국) 소속이 유력해 보인다.

이들은 북한 영화를 통해서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68년 1월에 발생한 미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를 다룬 북한 영화 ‘제 곳으로 보내라’에서 아버지 드레즈녹은 푸에블로호 부커 함장의 할아버지 역으로, 테드는 미군 4성 장군으로, 제임스는 미군 정보기관 요원으로 각각 출연했다.

아버지 드레스녹은 주한미군 제1기병사단 일병으로 근무하던 중 1962년 지뢰밭을 넘어 북한으로 도주했다. 첫 번째 부인의 외도와 이에 따른 이혼으로 심신이 불안한데다, 외박증을 위조했던 것이 적발되자 법적 처벌을 피해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1978년 북한 비밀요원에 의해 납치된 루마니아 여성화가 도이나 붐베아와 재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1997년 아내가 암으로 죽자 드레즈녹은 아프리카 외교관과 북한 여성 사이에 태어난 북한 국적의 여성과 재혼해 셋째 아들을 낳았다.

북한으로 도주한 미군 출신은 모두 4명이다. 모두 외국인 여성과 북한에서 결혼했다. 1980년 북한으로 납치됐던 일본 여성 소가 히토미와 결혼해 살던 중 2004년 일본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월북 미군 출신의 로버트 젠킨스 씨는 자신의 아이들이 스파이 교육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영화에 출연한 테드와 제임스 역시 외국어대에서 외국어를 집중 교육 받고 스파이 훈련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모들과 달리 북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은 북한 여성과의 결혼을 허가 받았다. 테드는 동갑내기 여성 이옥숙과 연애 결혼해 7세, 6세 된 아들을 두고 있다. 아들의 이름은 홍보답과 홍보검으로 지었다고 한다. 보답과 보검 모두 당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이름이다. 제임스는 중매를 통해 5살 연하인 최은정을 아내로 맞아 6살 된 딸 홍진주를 두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인 드레즈녹은 월북 후 평양외국어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한편 북한 영화에서 미국인 역으로 단골 출연했지만 건강악화로 몇 년간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월북 미군 드레즈녹과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2006년 영국인 감독 다니엘 고든의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화제가 됐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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