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의 특강은 흡사 대선 출사표를 방불케 했다. 야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박 시장은 그간 정치 현안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날은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밝혔다. 전날 광주를 찾은 박 시장은 14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호남 잡기 행보를 계속한다.
○ 朴, 소통-협치-경청 강조
‘1980년 5월 광주가 2016년 5월 광주에게―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학생, 교직원,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박 시장은 이날 민생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천하가 고통과 절망 속에 잠겨 있어 아직도 저는 편히 잠들 수 없다”며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고도 했다. ‘역사의 부름’을 전제로 더 큰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협약, 개성공단 폐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등을 언급한 뒤 “역사의 후퇴는 멈추지 않고 있다”며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호남에서는 더민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생각한다”며 “4·13총선은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다”라고 했다.
박 시장은 소통, 협치, 경청을 강조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기동민 당선자는 “소통과 협치는 박 시장의 일관된 정치 철학이자 신조”라며 “대선과 관련해 ‘스스로 뛰어들지 않겠지만, 역사와 시민이 부른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그동안 ‘행정’에 더 치중했던 박 시장의 발언과 행보가 광주 방문을 기점으로 더 ‘정치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 광주 쟁탈전 본격화
박 시장의 강연에 대해 더민주당 관계자는 “장소로 광주를 택한 점은 야권의 심장이지만, 뚜렷한 맹주가 없는 호남을 껴안으려는 의도”라고 했다. 더민주당은 광주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할 만큼 참패했지만, 당내에서는 호남을 대표할 만한 대선 주자를 꼽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 시장의 잠재적 경쟁자인 문재인 전 대표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상황이다.
박 시장은 광주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호남 껴안기’에 나섰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1980년) 광주 5월의 이야기는 같은 시절 경주마처럼 성공만을 좇았던 제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며 “광주 정신은 평범하게 살 뻔한 박원순의 인생을 바꿔 놨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늘 이곳 광주에서 정치적 대전환의 중대한 기회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향후 정치적 비전과 목표를 광주에서 내놓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박 시장은 이날 광주 시의원들과 만나서도 ‘큰 뜻’을 감추지 않았다. 한 시의원이 “총선 과정에서 존재감이 미흡했다”고 하자 박 시장은 “시정에 전념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 존재감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박 시장의 대선 도전에 대해 참석한 시의원들 대부분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했다.
박 시장을 시작으로 5·18을 전후로 주요 대권 주자들의 ‘광주행’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17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 전남 전북을 찾을 예정이다. 같은 기간 문 전 대표도 4·13총선 이후 세 번째 호남 방문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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