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날려버린 평화협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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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비핵화와 병행 논의 고려했으나,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 계기로 접어
향후 대화보다 전방위 압박 나설듯

7차 당 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된 북한 김정은이 핵보유국 선언을 한 것을 계기로 미국은 평화협정 논의 카드를 당분간 꺼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3월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북한과 비핵화 및 평화협정 병행 논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평화협정 병행 논의는 당분간 미국의 고려 카드에서 빠지게 됐다.

복수의 미 정부 당국자는 최근 한국 측에 “4일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DNI)이 북-미 간 평화협정 논의 때 한국이 양해할 수 있느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일각에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설령 클래퍼가 그렇게 말했다손 치더라도 현재로선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고 밝힌 것으로 9일(현지 시간) 전해졌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1월 4차 핵실험 후 무수단 미사일 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등 도발을 일삼는 데다 9일 폐막한 노동당대회에서 핵보유국을 선언하면서 북한과 평화협정을 논의할 정치적 공간이 거의 사라졌다고 미 정부가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담회에서 “미국 관리들의 평화협정 언급에 대한 얘기가 일부 언론에서 나왔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미국 인사들이 평화협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모든 비핵화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한미중 등 관련국이 북-미 평화협정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 중 마지막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과 대화 물꼬를 트려는 노력은 중단되고 제재 이행 등 전방위 압박으로 대북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이 임박한 데다 미 대선 구도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결로 정리되면서 워싱턴 정가에서 대북 대화를 주장하는 비둘기파의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연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lunatic)’라고 부르며 중국을 통한 압박을 강조하고 있다. 클린턴도 오바마 대통령보다 강력한 대북 압박을 주문하고 있다. 워싱턴의 다른 소식통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의 창을 완전히 닫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비핵화 없는 평화협정 논의를 제안할 경우 미국은 미련 없이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와 국제사회는 결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핵개발의 미몽에서 깨어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도록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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