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새 건물로 옮겨라 일방 통보” “商-漁-消 의견청취만 3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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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vs 호주 대표 수산시장 ‘현대화 과정’ 극과 극

노량진수산시장 옛 건물에서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 소매상인들. 붉은색 조끼를 입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불안한 분위기 때문인지 관광객들은 선뜻 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수협은 안전을 이유로 옛 건물을 철거한 후 복합리조트를 지을 예정이다.
노량진수산시장 옛 건물에서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 소매상인들. 붉은색 조끼를 입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불안한 분위기 때문인지 관광객들은 선뜻 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수협은 안전을 이유로 옛 건물을 철거한 후 복합리조트를 지을 예정이다.

시드니피시마켓의 경매는 1989년 도입한 전자경매시스템 덕분에 전통적인 방식보다 3, 4배 빨리 끝난다. 그 덕분에 싱싱한 해산물을 신속하게 거래처와 각 식당에 모두 배송할 수 있다. 시드니=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시드니피시마켓의 경매는 1989년 도입한 전자경매시스템 덕분에 전통적인 방식보다 3, 4배 빨리 끝난다. 그 덕분에 싱싱한 해산물을 신속하게 거래처와 각 식당에 모두 배송할 수 있다. 시드니=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화려한 수신호는 없었다. 랩처럼 읊조리는 듯한 라임도 없었다. 경매시장 하면 먼저 떠오르는 모자 쓴 아저씨들이 손가락으로 금액을 표시하고,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은 호주 시드니피시마켓에서는 볼 수 없었다.

기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호주 외교부의 한-호주 언론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13일 시드니피시마켓을 찾았다. 이날 오전 6시, 경매인 150여 명은 계단식 강당처럼 생긴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싱싱한 수산물들이 플라스틱 박스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부들이 밤사이 끌어올린 대게와 털게, 랍스터, 대구, 연어였다. 테이프로 꽁꽁 집게손을 감아놨지만 터질 듯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팔을 움직였다.

시장 중앙에는 대형 스크린 세 개가 설치돼 있었다. 화면 안에는 거대한 초시계 모형이 각각 하나씩 떠 있었다. 첫 번째 스크린에 물건 번호가 떴다. 머드크랩이었다. 경매인들이 앉은 책상마다 전자계산기만 한 경매 기계가 붙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경매는 낮은 가격부터 높은 가격으로 올라가지만 이곳은 역으로 내려간다. 물품당 10년 평균 가격을 조사해 그보다 조금 높은 가격으로 경매를 시작한다.

바늘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가격이 나오자 한 경매인이 버튼을 눌렀다. ‘낙찰!’ 다음에는 5박스 중 몇 개나 구매할지 숫자를 입력하면 된다. 3박스만 고르자 나머지 물건에 대한 입찰이 다시 시작됐다.

시드니피시마켓 직원인 앨릭스 스톨즈나우 씨가 소매시장에 나온 호주산 랍스터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시드니피시마켓 직원인 앨릭스 스톨즈나우 씨가 소매시장에 나온 호주산 랍스터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시드니피시마켓 직원인 앨릭스 스톨즈나우 씨가 소매시장에 나온 호주산 랍스터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이 시장에서 매일 이렇게 처리되는 물건은 50∼55t에 달한다. 직원인 앨릭스 스톨즈나우 씨는 “네덜란드 화훼시장에서 도입한 전자경매방식인데 전통적 방식보다 3, 4배 시간이 짧게 모든 과정이 끝난다”고 말했다. 경매인들은 짧은 시간에 경매를 끝내고 물건을 각 거래처에 배송한다. 생물(生物)의 신선함을 유지하고, 납품받는 마트와 레스토랑에서도 손님맞이를 서두를 수 있다. 수산시장으로서의 경쟁력이 뛰어난 셈이다.

상인과 관광객 모두를 만족시킨 ‘콘텐츠 현대화’

시드니피시마켓이 블랙와틀 만에 자리 잡은 지는 50년이 훨씬 넘는다. 어부와 상인이 자주 드나들던 곳인 만큼 수산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인쇄공장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해 확장했기 때문에 건물이 화려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수산물에서 나는 비린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바닥 위생에 신경을 썼다. 오가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화장실과 이동 통로도 계속 고쳤다.

이곳이 지역 명소로 자리 잡은 이유는 재래시장의 맛은 남아 있으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갖췄기 때문이다. 수산시장이 잘되기 위해서는 상인들의 도소매 거래가 활발하면서 일반 소비자와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이곳은 1989년 전자경매시스템을 전격 도입한 데 이어 같은 해 ‘시푸드 스쿨’을 만들었다.

‘시푸드 스쿨’은 일반인을 위한 요리 교실이다. 참가비를 내고 예약하면 해산물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방법을 셰프가 나와 알려준다. 저렴한 해산물 요리부터 크리스마스 때 가족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고급형까지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대회협력실장인 스테퍼니 윌리엄스 씨는 “해산물의 맛과 매력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30명 이상이 동시에 참가할 수 있는 대형 부엌에서 재미있게 실습한 뒤 접시를 들고 옆방으로 이동한다. 바다가 보이는 공간은 고급식당처럼 은은한 조명과 벽지로 꾸몄다. 와인잔도 마련돼 있다. 자신이 한 음식을 마지막에 음미하며 먹으면서 끝내는 것이다. 해산물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행복한 기억을 갖고 돌아간다.

해산물의 싱싱함을 경매 과정에서 직접 보고, 요리로 맛을 느낀 ‘오감만족’ 마케팅은 결국 구매로 이어진다.

1층 소매코너는 백화점 지하 수산물 코너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꾸며져 있다. 얼음으로 가득 채운 매대에는 가격이 표시돼 있어 상품을 비교해보며 살 수 있다. 공개된 공간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손질해주니 지역주민들은 위생과 가격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관광객이 즉석에서 조리된 음식을 편안한 자리에서 먹을 수 있도록 테라스 전망에도 신경을 썼다.

소비자 동선을 최대한 고려해 가게를 배치한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해산물과 곁들일 채소, 과일, 치즈를 동시에 구매할 수 있도록 주차장으로 나가는 길까지 다른 업종도 속속 배치해 두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원스톱 쇼핑’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시드니피시마켓 역시 과거의 인쇄공장 자리를 버리고 옆에 새로운 건물을 짓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인근 피어몬트 지역의 재개발이 가속화하면서 2014년부터 다양한 재개발 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상인, 어부, 소비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데만 3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윌리엄스 실장은 “모든 의견을 ‘문서화’해 기록하고 있으며 이들이 찬성하지 않는 현대화는 추진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홈페이지에도 ‘주차장을 이렇게 개선해 달라’는 소비자 목소리를 여과 없이 접수하고 있다.

‘시장 이분화’를 택한 일본 쓰키지 시장

호주 시드니피시마켓이 콘텐츠 현대화를 먼저 갖추는 사이, 세계 최대 수산시장인 일본 쓰키지 시장은 전통과 실리를 모두 추구하는 방식의 시장 현대화를 추진했다. 1923년 이후 도쿄 만 인근 쓰키지에 둥지를 튼 이 시장은 전 세계적인 수산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경매인과 도매상인들이 일하는 ‘장내(場內)시장’과 소매·유명식당이 밀집한 ‘장외(場外)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내시장에는 특이하고 진귀한 해산물을 눈으로 직접 보고 요리 영감을 얻으려는 요리사들이 수시로 온다. 새벽 경매로 낙찰받은 물건들은 도쿄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으로 배송된다. 심장부처럼 혈관을 타고 소매시장으로 신선한 해산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반 시민과 관광객들은 눈으로만 보고 가지 않는다. 즐비한 스시집과 서서 먹는 생선덮밥집에서 아침을 줄서서 먹는다. 수산시장에서 눈으로 본 신선함을 입으로 느끼고 돌아가는 셈이다. 장외시장에 있는 가쓰오부시(말린 가다랑어), 일본 간장, 칼, 녹차가게도 덩달아 함께 잘 된다. 새벽시장을 보고 아침을 먹으려는 외국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2015년 초 ‘퍼스트캐빈’ 같은 호텔도 앞다퉈 개장했다. 수산시장 하나가 인근 숙박업까지 같이 살리는 셈이다.

쓰키지 시장도 현대화에 대한 고민을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너무 몰리다 보니 경매상인들도 불편을 호소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농산물 도매시장과 수산물시장을 합친 거대한 현대시장을 도쿄 도요쓰에 짓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장 현대화를 추진하자 소매상인들의 반발은 거셌다. “도요쓰는 도심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전처럼 사람들이 찾기 어려울 것이다” “‘쓰키지’라는 역사적 브랜드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대운동이 잇따랐다.

결국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댄 상인회와 관공서는 ‘시장 이분화’를 추진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올해 11월 도요쓰에 도매시장(장내시장)을 옮기고, 현재 일반인이 많이 찾는 장외시장은 그대로 두기로 한 것. 그 대신 장내시장이 옮기고 난 후의 자리를 재정비하여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보완하기로 했다. 대화와 소통이 만들어낸 제3의 대안을 추진한 것이다.

상인과 수협의 갈등 골 깊어진 노량진수산시장

3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건물이 개장되었지만 소매상인의 입점 거부로 여전히 1층은 곳곳이 텅 비어 있다.
3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건물이 개장되었지만 소매상인의 입점 거부로 여전히 1층은 곳곳이 텅 비어 있다.
세계 대표 수산시장이 각각 자신들만의 색깔을 갖고 시장 현대화를 추진하는 사이, 한국의 노량진수산시장도 2008년부터 시장 현대화를 추진해왔다. 결과는 참담하다. 2012년 착공해 지난해 10월 완공된 새로운 노량진수산시장 건물은 소매상인들이 3월 개장 후 입점을 거부하면서 갈등이 표출됐다.

27일 찾은 노량진수산시장 옛 건물에는 여전히 상인들이 ‘단결’ ‘투쟁’ ‘쟁취’ 같은 글씨가 쓰인 붉은 조끼를 입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상인회와 대립하고 있는 수협이 빨간색 페인트로 ‘철거 예정’ ‘×’와 같은 글씨를 건물 군데군데 써놓아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유모차를 밀고 들어왔다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금방 자리를 뜨기도 했다.

새로 지은 현대화 건물에는 입주하지 않은 곳이 많아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2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있는 횟집 옆에는 ‘노래자랑대회’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소매상인과 수협 측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서효성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사무국장은 “3년간 공사를 하면서 상인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고 공사가 끝난 뒤에야 우리는 현재 건물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몇몇 상인회 간부에게 설계도면만 보여줬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복층구조, 가게당 전용면적이 줄어드는 점을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졌다. 상인들은 “도매시장은 생선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천장이 높아야 하는데 기본적인 수산물 도소매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건물”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새 건물의 가게당 면적이 줄어든 데 대해 상인들은 “수족관 하나 들어갈 데 없어 마트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항의한 반면 수협은 “미리 고지했다”고 반박했다.

수협이 옛 건물을 철거한 뒤 지을 복합리조트에 대해서도 상인들의 불만은 거셌다. ‘임대료 장사’에만 목을 매는 것 아니냐는 것. 수협은 “새 건물 이전으로 임대료가 올라가는 것에 대한 일부 상인의 불만일 뿐”이라며 안전에 문제가 많은 옛 건물은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에 따르면 소매상인 중 40%는 새 건물로 들어갔고, 60%는 입점을 거부하고 있다. 양쪽의 갈등 골이 깊어지는 동안 서울시는 아직 뚜렷한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결론이 나든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가 남긴 상처는 깊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깨끗해졌지만 재래시장의 맛은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산물을 펼쳐놓고 판매하는 것만으로 수산시장의 경쟁력이 높아지지는 않기 때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시장 현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계천 시장상인들의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가든파이브’ 이전이 남긴 실패의 교훈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재래시장의 현대화라는 큰 목표를 지나치게 짧은 공사기간에 소통 없이 추진했다”며 “임대료 인상유예, 구조변경 보완을 통해 상인과 수협이 지금이라도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시드니피시마켓#노량진 수산시장#시푸드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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