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친박 팔지 말라”는 청와대 경고 왜 총선 전에 못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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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청와대에서 “더 이상 친박(친박근혜)을 팔지 말라”는 소리가 나왔다. 5월 3일 새누리당 원내지도부 경선을 앞두고 친박 중진인 유기준 의원이 탈(脫)계파를 선언하며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굽히지 않자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뜻과 관련 없는 출마’이고 대통령을 계파 수장 수준으로 끌어내려선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런 경고가 4·13총선 전에 나왔더라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총선 때 진박(진짜 친박) 후보들을 지원한 것은 임기 후반과 퇴임 후 박 대통령을 지키는 우군세력을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총선 결과는 참담했다. 청와대에선 친박색이 더 짙어졌다고 자위할지 모르나 여소야대 국면에선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근육 자랑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친박이라는 말을 내가 만들지도 않았고,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한 것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청년혁신위가 어제 성명을 통해 “정녕 대통령께서는 이번 선거에 어떠한 책임도 없단 말인가”라고 따졌겠는가.

친박계가 유 의원을 만류하는 것은 총선 패배에 책임지고 자숙하자는 뜻이 아니라 ‘원내대표-비박, 당권-친박’을 위한 노림수일 수도 있다. 친박계 좌장 격인 최경환 의원이 “등을 떠밀어도 (대표 경선에) 나가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했지만 그건 ‘심정’이고, 대표에 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정당이라면 희망이 없다. 차라리 친박계가 실리를 좇아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나서거나 분화 또는 해체로 가야 새누리당이 확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국정 핵심 세력의 결속력 약화는 곧 박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뜻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친박을 떼어냄으로써 오히려 박 대통령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맞을 수도 있다.

“친박 팔지 말라”는 이번 청와대 경고는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미여야 한다. 나아가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간접 화법 아닌 분명한 육성으로 “계파 해체” 선언을 하기 바란다. 무릇 계파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부나방 같은 것이다. 어차피 1년 10개월 남은 대통령에게 줄을 설 계파는 없다. 대통령이 국민을 위하는 국정을 편다면 따르는 계파가 없어도, 아니 없는 편이 국민의 박수를 더 받을 수 있다.
#청와대#친박#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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