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들 “가만히 있을수야” 3·1운동 거사 준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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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2·8독립선언 직전… 송계백 귀국해 仁村선생 등 만나
도쿄서 97주년 기념식 열려

8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재일본한국YMCA회관에서 열린 ‘2·8독립선언 제97주년 기념식’에서 도쿄한국학교 학생-학부모합창단이 가곡 ‘아름다운 나라’를 부르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8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재일본한국YMCA회관에서 열린 ‘2·8독립선언 제97주년 기념식’에서 도쿄한국학교 학생-학부모합창단이 가곡 ‘아름다운 나라’를 부르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919년 2·8독립선언을 준비하던 일본 유학생 송계백은 거사 직전 몰래 귀국해 당시 중앙학교(현 중앙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송진우 현상윤 선생, 인촌 김성수 선생을 만났습니다.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계획을 알게 된 이들이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 되겠느냐’며 본격적으로 나서 3·1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8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재일본한국YMCA회관에서 열린 2·8독립선언 제97주년 기념식. 이종찬 광복회 이사는 축사를 하기 전 기자와 만나 2·8독립선언에서 3·1운동으로 이어지는 거사의 태동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촌 선생 등 애국지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달 후 3·1운동이 벌어지는 도화선이 됐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2·8선언 과정은 긴박했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젊은 엘리트들은 97년 전 이날 학우회 임원 선거를 구실로 조선기독교청년회관 1층 강당에 유학생들을 모았다. 사전에 인쇄한 2·8독립선언서와 결의문, 민족대회소집청원서는 이미 일본 정부와 각국 대사관, 일본 신문 및 잡지사에 보낸 뒤였다.

귀국 후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백관수 선생이 학생들 앞에서 “우리 민족에 민족자결의 기회를 주기를 요구한다”며 독립을 선언했다. 이어 김도연 선생이 “이 모든 항목의 요구가 실패할 때 우리 민족은 일본에 대해 영원히 혈전을 선포한다”며 결의문을 낭독했다. 강당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으며 결의문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며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 이사는 “세계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면 보통 변방에서 시작돼 중앙으로 확대되는데 일제 침략의 중심지인 도쿄 한복판에서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주동자들이 경찰에 체포됐지만 남은 이들은 경시청 바로 앞 히비야 공원에서 2월 12일과 24일 연이어 집회를 열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또 “일제에 순종했더라면 조선에 돌아와 떵떵거리며 살았을 유학생들이 이를 포기하고 일어선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3년 후인 2019년에 100주년이 되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 이사와 함께 유흥수 주일대사, 이낙연 전남지사 등이 참석했다. 위제하 오성규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 후손을 포함해 200여 명이 기념식장을 가득 메웠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3·1운동#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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