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자립 20%로 허덕여도… “공짜 산후조리 따라 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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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진 票 복지]<下>전염되는 성남式 표몰이 복지

《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를 강행하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다른 지역 재정은 대통령이 걱정할 일이다”라고 했다. 과연 성남발 무상복지는 성남만의 문제일까. 동아일보의 취재 결과 성남의 무차별적 복지가 다른 지역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 지역 지자체장도 ‘표(票)를 위한 복지’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성남발 복지 포퓰리즘이 타 지역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

경기 성남시가 3대 무상복지(청년배당,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를 추진한 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표(票)를 위한 복지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성남시가 지난해 3월 민간 산후조리원 이용비 지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10개 지자체가 유사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전남 광양시는 성남시가 무상교복을 추진하자 지난해 10월 같은 제도를 추진하기도 했다. 성남발(發) 무상복지가 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 재정 어려워도 票 복지 따라 하기

문제는 성남발 무상복지를 추진하는 지자체들의 재정 상황이 대부분 좋지 않다는 점이다. 10개 지자체 중 성남시(61.9%)보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곳은 인천(64.4%) 한 곳뿐. 나머지 9곳은 전국 지자체 평균(50.6%)에 못 미쳤고, 재정자립도가 20% 이하인 곳도 5곳이나 됐다. 성남의 영향을 받은 지자체들이 재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무상복지를 늘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는 성남과 유사한 신규 복지 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10개 지자체 중 3곳만 조건부로 사업 추진을 허용했다. 김충환 복지부 사회보장조정과장은 “재정 여건이 좋지 않거나 이미 유사한 제도를 갖고 있는데도 무상복지를 늘리려는 지자체가 많다”며 “성남발 무상복지가 타 지역으로 전염되듯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남발 무상복지가 확산될 기미를 보이면서 주변 지자체들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성남의 영향으로 무상복지에 대한 지역민의 요구가 커지면 재정 건전성을 위한 균형 예산 운영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야당 시장도 우려의 목소리

경전철 건설로 생긴 빚 5000억 원을 갚느라 꼭 필요한 사업만 엄선해 진행 중인 경기 용인시는 ‘조건 없이 돈을 주는 복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찬민 용인시장(새누리당)은 “아직 1300억 원의 부채가 남아 있어 시민들에게 그냥 나눠 줄 돈도 없지만 있어도 다른 방식으로 쓸 것이다”라며 “부채 상환에 맞춰 고용과 연계되고 파급 효과와 사회적 의미가 있는 용인만의 복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염태영 수원시장도 성남식 무상복지에는 견해를 달리했다. 염 시장은 “청년 문제는 단순히 돈을 지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청년들이 정책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입안 및 실행에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예산과 전담 조직, 제도를 만들어 지원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 지자체 폭주 막을 수단 부족해

문제는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자적으로 선심성 복지를 쏟아 내더라도 정부가 이를 견제할 뚜렷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교부금을 삭감해 해당 지자체를 압박하거나 예산안 재의를 요구할 수 있지만 둘 다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교부금을 삭감해도 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지자체는 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 지난해 12월 개정된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정부와 사회보장제도 신설을 합의하지 않은 지자체는 복지 사업에 들어가는 액수만큼 교부금이 감액된다. 그러나 서울시와 성남시 등은 교부금 감액을 감수하면서까지 청년수당, 청년배당 등 무상복지를 강행할 뜻을 밝히고 있다. 성남시 재정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것은 위례, 판교 등 신규 택지 개발에 따른 일시적인 세수 증가 덕인 측면이 크다.

정부의 예산안 재의 요구도 한계가 있다. 지자체장이 정부 또는 상급 지자체의 재의 요청을 받아도 지방의회에 재의 요구를 하지 않고 버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정부는 지루한 법정다툼에 기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경기도는 무상복지 예산안의 재의 요구를 성남시에 지시했지만 성남시는 오히려 철회를 요청했다. 김남준 성남시 대변인은 7일 “경기도의 재의 요구는 지방자치 훼손이자 복지 후퇴를 종용하는 부당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당) 출신 이기우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가 재의 요구 지시에 반대하는 등 남경필 지사의 연정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성남시는 이날 남자 아이를 출산한 홍모 씨(31)에게 25만 원 상당의 성남사랑상품권을 처음으로 지급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의 협의가 끝나기도 전에 성남시가 무상복지를 강행하는 게 바람직한지 되묻고 싶다”며 “재원 여력이 있으니 마음대로 돈을 쓰겠다는 지자체는 재원조정제도를 활용해 더 큰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해당 지역 주민이 무상복지의 허와 실을 직시하고 지자체장에게 선심성 복지가 ‘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연구실장은 “무상복지가 다음 선거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시민들이 여론으로 보여 줘야 과도한 복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도하게 지자체 복지를 막기보다는, 시민들이 무분별한 복지를 진행한 지자체장을 낙선시키면 학습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지자체 예산 年6% 늘때 복지부문은 14%씩 증가 ▼

방치땐 재정위기 초래 불보듯


최근 10년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은 매년 약 13%씩 늘고 있는 반면 지자체의 예산 증가분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 가면 ‘표를 위한 복지’가 지자체 재정을 크게 위협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동아일보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행하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예산 자료 중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의 수치를 분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중앙정부의 매년 총지출액과 복지재정 금액, 그리고 전국 지자체의 순계 예산과 사회복지예산 등을 매년 통계로 내놓고 있다.

본보가 분석한 위 4개 항목 중 가장 가파르게 늘어난 항목은 ‘지자체의 사회복지 예산’이었다. 2006년 13조8000억 원이던 전국 지자체 사회복지 예산은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44조1000억 원에 달했다. 10년 동안 매년 13.78%씩 늘어난 것.

반면 2006년 101조4000억 원이던 지자체 예산은 지난해 173조3000억 원이었다. 매년 6.14%가량 증가한 수치다. 복지예산은 매년 13%가 넘게 늘고 있는데 총예산이 늘어나는 속도는 절반가량인 연 6% 선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복지가 지자체 재정을 빠르게 잠식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복지 분야에 투입되는 예산 비중이 커질수록 다른 사회기반시설 구축이나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투입되는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이런 복지 확대 추세는 중앙정부와 비교하면 ‘눈덩이’처럼 커지는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중앙정부가 복지에 쓴 돈은 2006년 56조 원, 지난해 115조7000억 원이다.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은 8.40%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자체 복지예산 증가 속도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자체 복지 비용이 불어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물론 지자체장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심성 공약이 가장 큰 이유지만, 복지정책의 구조가 바뀐 탓도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에서 시행하던 복지 사업 중 다수가 지자체로 넘어온 것. 이 경우 보통 정부와 지자체가 비용을 일정 비율 분담하기 때문에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복지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이상호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는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예산을 분석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복지 지출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심각하게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자체가 더이상의 복지 지출을 견디기 어렵다”며 “전국적인 형평성과 통일성이 요구되는 복지 사업은 지자체에서 중앙정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유근형 noel@donga.com / 수원=남경현 / 송충현 기자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성남시#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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