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시민 “대기오염 탓에 공항마비 처음”… 200편 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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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 폭탄 - 이상고온 - 토네이도… 기상이변 지구촌, 크리스마스 악몽

올해 지구촌 크리스마스는 기상이변으로 어둡고 땀나는 크리스마스가 됐다. 중국 베이징의 관문인 서우두(首都) 공항이 대기오염으로 마비상태에 빠졌다. 미국과 캐나다 동부 지역은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하며 초여름 날씨의 크리스마스를 맞아야 했다. 미국 중남부 지역에선 때 아닌 토네이도(회오리바람)로 14명이 숨지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맞았다.

25일 오전 9시경 “중국 서우두 공항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돼 공항이 마비됐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스모그가 베이징 일대를 온통 뒤덮어 비행기 이착륙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예전에 짙은 스모그로 여객기가 몇 대씩은 운항이 중단된 적이 있지만 수백 대가 뜨고 내리지 못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2008년 개항한 신공항 격인 제3공항으로 가는 공항고속도로. 평소 같으면 1차로 제한속도인 시속 120km를 넘겨 달리던 택시 등 자동차도 짙은 안개로 차폭등을 켜고 시속 70km 이하로 느릿느릿 운행했다. 고속도로 표지판도 희미해 글자를 분간하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

공항 안내센터에 도착해 보니 카운터 직원 2명은 몰려드는 승객들의 항공편 확인 요구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운터 뒤 대형 안내판을 보니 이날 오전 7시 청두(成都)행 CA194편부터 오후 11시 칭다오(靑島)행까지 40편이 취소된 상태였다. 대부분 국내선이지만 미국 댈러스와 시카고, 폴란드 바르샤바 등 국제선도 일부 있었다.

한 남성은 “벌써 4차례나 연기됐다. 뜬다는 거냐 뜨지 못한다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오 무렵 2층 식당가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3시간 늦게 출발한다고 하지만 이러다 취소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 누리꾼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비행기가 착륙한 뒤에도 기내에서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며 “안내방송이 없었다면 바깥이 워낙 뿌옇게 흐려 있어 마치 비행기가 구름 속에 떠 있는 것으로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주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시거리가 워낙 짧았다는 것이다.

이날 톈진(天津) 공항도 항공기 이착륙이 일부 중단돼 수도권에 진입하는 항공기들이 주변 공항을 찾거나 돌아가기도 했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오전 11시 현재 서우두 공항에서 이착륙할 예정이던 국내외 여객기 554편 중 200편 이상이 취소됐다고 공항 측 웨이보가 발표했다”고 전했다.

짙은 스모그의 급습에 베이징 기상국은 이날 오전 6시 30분을 기해 스모그 2급 주황색 경보를 발령했다. 19일 오전 7시부터 22일 밤 12시까지 1급 적색경보를 발령했다가 해제한 지 3일 만에 또다시 경보 조치를 내린 것이다. 주황색 경보는 공기질 지수(AQI)를 기준으로 3일간 ‘심각한 오염’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린다. 베이징 지역의 PM 2.5(지름 2.5μm 이하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이날 오전 5시 592까지 올라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인 m³당 25μg의 24배까지 상승했다. 오후 3시에도 500 이상을 보였다.

시내 전역에서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6차로 도로 맞은편 건물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스모그가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서우두 공항으로 연결되는 1·2공항고속도로는 정상 운행됐으나 베이징과 톈진 주변의 상당수 고속도로는 가시거리가 50m까지 줄어들어 곳곳이 폐쇄됐다. 베이징 교육 당국은 오전 9시 각급 학교에 사실상 휴교를 권고했다.

수도권 이외의 산둥(山東) 성도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더저우(德州) 시 등 4개 도시에서 24일 오전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중국 수도권과 산둥 성의 스모그는 북서풍이 불면 언제든지 한반도로 몰려올 수 있다. 한반도가 ‘스모그 폭탄’을 옆에 끼고 사는 형편이 됐다. 이달 초 중국 수도권의 스모그는 바람이 남쪽으로 불어 상하이(上海) 난징(南京) 등 창장(長江) 강 삼각주 지역으로 내려갔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중국 대륙을 뒤덮은 스모그가 26일에야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미국과 캐나다 동부 지역은 눈에 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하며 파란 잔디 위에 싱그러운 봄꽃이 피는 ‘그린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24일 뉴욕의 기온은 초여름 기온인 22.2도까지 치솟았다고 ABC가 보도했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1871년 이후 뉴욕의 크리스마스이브 최고 기온은 1996년의 17.2도였다. 워싱턴(21.6도)과 보스턴(20도)도 역대 최고 기온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미 동부 곳곳에서 동백 같은 봄꽃이 피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시민도 많이 목격됐다. 기상 리포터들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시작된 슈퍼엘니뇨의 영향 때문이라면서 “산타클로스가 땀 흘리지 않으시려면 버뮤다 반바지(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를 입으셔야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뉴욕 북쪽에 위치한 캐나다 수도 오타와도 17도로 1996년 기록한 최고 기온보다 두 배 이상 기온이 치솟았다고 캐나다 CBC가 보도했다. 몬트리올도 1957년의 최고 기온 8.3도보다 두 배 가까이로 높은 16도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퀘벡의 유명 스키장인 아울스헤드는 문도 열지 못한 반면 동한기를 맞아 한산해야 할 골프장은 따뜻한 날씨 속에 라운딩을 즐기는 골퍼들로 붐볐다. CBC는 이 같은 ‘그린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캐나다인이 전 국민의 8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중남부 아칸소,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테네시 주에선 23일과 24일 강력한 토네이도로 14명 이상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지역에서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한 고속도로 폐쇄, 학사 일정 취소 조치가 내려졌고 일부 공항에선 비행기 운항도 취소됐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권재현 기자
#스모그#이상고온#토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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