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말수 적던 아이들, 말로 치유받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장애아동 위한 재활승마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내 실내 승마장에서 열린 재활승마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말을 타고 승마장을 돌고 있다. 안전을 위해 말 한 마리에 자원봉사자 3명이 투입됐다. 재활 승마는 신체적 장애로 운동이 부족한 아이들의 운동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내 실내 승마장에서 열린 재활승마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이 말을 타고 승마장을 돌고 있다. 안전을 위해 말 한 마리에 자원봉사자 3명이 투입됐다. 재활 승마는 신체적 장애로 운동이 부족한 아이들의 운동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경속보(말이 가볍게 속보(速步)를 하는 보법)!”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 내 실내 승마장. 권진현 한국마사회 승마힐링센터 수석코치(50·사진)가 ‘경속보’를 외치자 말에 타고 있던 아이들도 일제히 따라 한다. 구호를 들은 말의 발걸음이 빨라지자 반동을 흡수하기 위해 아이들의 몸도 안장 위에서 자연히 리듬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말의 자연스러운 리듬이 아이들의 근육을 자극시키며 전신운동 효과를 일으킨다. 말과 혼연일체가 된 시간, 아이들의 입가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꽃핀다. 권 수석코치가 “평보(말의 가장 느린 보법)!”를 외치자 다시 말의 걸음이 느려진다. 경속보와 평보가 번갈아 계속되는 가운데 30분간의 ‘재활승마’ 수업이 진행됐다.

말 위에선 멋진 기수

수업 시작 20분 전. 실내 승마장 앞에는 초·중등생을 태운 승용차가 속속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부모들은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 아이를 태우거나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실내 승마장 앞까지 인도했다. 수업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뇌병변장애(뇌성마비, 외상성 뇌손상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해 발생한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몸이 불편하다. 일부 아이들은 편마비(신체 좌측 또는 우측 부분이 마비되는 현상)를 겪고 있어 어머니와 아버지가 양쪽에서 부축하지 않으면 걷기 힘들 정도였다.

수업은 실내 승마장 오른쪽 입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아이들이 탈 말은 ‘재즈’와 ‘보리’. 아이들이 “재즈야 보리야, 이리 와”라고 부르자 말들이 천천히 걸어왔다. 권 수석코치와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을 말 위에 태우고 키에 맞게 등자를 조절해줬다.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말의 등과 갈기를 쓰다듬어 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말 한 마리마다 안전을 위해 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됐다. 말 양쪽에 있는 사이드워커 2명은 아이의 발을 잡았고 리더로 불리는 한 명은 앞에서 견마잡이를 했다.

오른쪽 입구에서 말을 타고 실내 승마장으로 들어갔다. 초반에는 워밍업 단계인 평보로 승마장을 네 바퀴 돌았다. 권 수석코치는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의 상태를 일일이 살피며 끊임없이 칭찬과 주의를 줬다. 말을 멈추게 하는 구호는 ‘워’. 아이들이 “워”라고 외치자 말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섰다. 아이들은 말에게 “잘했어”라는 격려와 함께 가볍게 등을 두드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날은 처음 수업이 시작된 지 6주째. 어느 정도 말에 익숙해진 아이들을 위해 속보, 경속보 및 장애물 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경속보가 시작되자 권 수석코치의 ‘하나, 둘’ 구호에 아이들의 몸도 자연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평소에는 걷는 것조차 불편한 아이들이었지만 놀랍게도 말 위에서는 여느 프로 기수 못지않게 안정되고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날은 간단한 장애물 넘기가 진행됐다. 처음 해본 승마 기술에 아이들은 다소 당황했지만 두 번 정도 반복하자 곧 익숙해졌다. 말도 아이들의 구호 소리와 고삐 움직임에 영리하게 반응하며 사뿐히 장애물을 넘었다. 장애물을 넘을 때도 말에 탄 아이들의 꼿꼿한 자세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느덧 분침이 반 바퀴 돌며 즐거웠던 수업도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에서 내리기 전 말에게 고마움을 전달했다. 30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말 사이에서는 동료 이상의 우정이 싹텄다.

수업을 지켜보고 있던 학부모 A 씨가 말에서 내린 딸에게 “오늘 어땠어”라고 묻자 딸은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A 씨는 “딸이 뇌병변으로 인해 편마비를 겪고 있어 혼자 움직이면 자꾸 넘어지기 때문에 운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며 “한창 뛰어놀 나이에 집에만 있어 걱정이 많이 됐는데 여기서 안전하게 말을 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다”고 밝혔다. A 씨는 “승마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딸의 성격도 더 쾌활해진 것 같고 몸도 더 건강해진 것으로 보여 부모 입장에서는 기쁘다”고 덧붙였다.

각광받는 재활승마

재활승마 치료는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중요한 재활 수단으로 자리 잡았을 뿐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뉴욕 주 이스트오로라에 위치한 운동치료연구센터의 존 스테르바 박사가 2002년 월간 의학지 ‘발달의학과 소아 신경학(developmental medicine & child neurology)’에 실은 논문에는 재활승마의 효과에 대해 잘 나타나 있다. 스테르바 박사는 4세 이후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평균 9∼10세의 어린이 17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1번, 1시간씩 18주간 재활승마 치료를 진행했다. 그는 뇌성마비 아이들의 신체 운동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인 대운동 기능 분류시스템(Gross Motor Function Classification System)을 토대로 아이들의 운동 능력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18주 코스의 재활승마를 마친 후 아이들은 달리는 능력이 약 9%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재활승마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대구대 물리치료학과와 성덕대 작업치료과 연구진이 공동 연구해 2011년 대한작업치료학회지에 실은 논문에는 경련성 뇌병변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8주간의 재활승마 치료 후 근육 경련이 줄어들고 상완이두근 등의 근육 활성도가 늘어났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진은 재활승마가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근육 발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뇌병변 장애로 운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신체 발달에 도움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재활승마협회(PATH) 어드밴스트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승마경력 38년의 권 수석코치는 이에 대해 “승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승마는 잔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큰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보다 힘들지 않지만 아이들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신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으로는 재활을 할 수 없지만 승마로는 재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 수석코치는 “말을 오랜 시간 타도 기수는 숨을 헐떡이지 않지만 전신운동이 돼 온몸에 땀이 난다”며 승마의 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이와 함께 앞뒤로 몸이 갑자기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말 위에서는 자연히 몸을 꼿꼿하게 세워야 하기 때문에 성장기 아이들의 자세 교정에도 좋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