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위 건축가’ 김선욱 색깔 듬뿍 담은 베토벤 소나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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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슈타인’ ‘하머클라비어’ 두 곡… 생애 첫 앨범 “가장 많이 연주한 곡”

작곡가 진은숙은 김선욱에 대해 “작곡가가 ‘내 곡이 이런 음악이었나’라고 놀랄 정도의 연주를 한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이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앨범(아래 사진)에서도 그만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줬다. 빈체로 제공
작곡가 진은숙은 김선욱에 대해 “작곡가가 ‘내 곡이 이런 음악이었나’라고 놀랄 정도의 연주를 한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이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앨범(아래 사진)에서도 그만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줬다. 빈체로 제공
피아니스트 김선욱(27)이 최근 독일 악센투스(Accentus) 레이블을 통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두 곡, Op.53 ‘발트슈타인’과 Op.106 ‘하머클라비어’를 녹음한 생애 첫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올 6월 녹음 장소로 유명한 베를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녹음했다. 이곳은 지휘자 카라얀과 베를린 필이 애용했던 곳이다.

김선욱은 2012, 2013년 두 해에 걸쳐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사이클을 진행했다. 그는 “이번에 녹음한 두 곡은 여태껏 무대에서 제일 많이 연주한 걸작으로 어떤 음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생각과 색깔을 담을 수 있는 곡”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트슈타인’은 기존의 거장들과 직접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나다. 첫 주제의 연타음이나 트릴부터 베토벤이 의도한 새로운 사운드의 세계를 인식한 듯했다. 장식적인 효과를 배제한 채 부분마다 전혀 다른 의미와 효과를 생성해냈기 때문이다.

“제가 중점을 둔 것은 이 작품만의 생명력입니다. 동시대에서 바라본 베토벤 소나타에는 현대음악에 버금가는 새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작품의 구조적인 전개는 놀라움의 연속이죠. 음표들의 단순하면서도 다채로운 음형과 대위법적 전개, 발전부의 긴장감은 너무나 탁월합니다.”

페달링을 통해 베토벤 시대의 짧고 간결하며 섬세한 음향을 정격적이고 마법적으로 표현해낸 것도 그만의 장점이다. 그는 파리에서 발견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레코딩 현장으로 공수하고,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의 전속 조율사를 대동할 만큼 악기의 음색에 신경을 쓰기도 했다.

피아노 소나타의 초대작인 ‘하머클라비어’에서는 대하드라마 이상의 스케일과 구조적 안정성, 극한의 디테일을 보여줬다.

“심장이 뛰는 듯한 1악장과 추상적이며 충격적인 2악장, 소우주의 아름다움을 담은 3악장을 통해 인간의 모든 감정을 응축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정적을 거친 뒤 파편적인 조각들과 세 개의 주제가 대위법적 방식으로 진행되는 4악장 푸가에서는 단순한 구조 안에서 파생되는 초월적 힘과 논리적 완결성을 발견하고자 했죠.”

김선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음표와 음향에 자신만의 관계를 설정하고 독창적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의 세계를 조형했다. 그에게 이제 ‘무형의 구조를 만드는 건반 위의 건축가’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여줄 때가 된 것 같다. 그의 첫 솔로 앨범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발견해야 할 미지의 음향과 방대한 의미의 광맥이 많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김선욱#베토벤#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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