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의 시장과 자유]대한민국 3대 경제개혁, 금융실명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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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노태우 정부 시절 많은 경제기자들의 숙원은 금융실명제였다.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다루는 기사와 논평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포함됐다. 가명거래나 차명거래는 권력과 재력을 지닌 특권층에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인식도 팽배했다.

그러나 당위론과 별개로 실제로 시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서슬이 퍼렇던 전두환 정부도 발표까지 했다가 반발에 밀려 중도 포기한 정책이었다. 재계는 실명제 말만 나오면 우리 경제가 거덜이라도 날 듯 후유증을 과장했다. 정치권 역시 여야 할 것 없이 부정적이었다.
1993년 여름 YS의 결단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특별담화문을 통해 금융실명제 도입을 전격 선언한 1993년 8월 12일 저녁의 충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큰 정책일수록 사전에 정보가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금융실명제는 완벽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 정책 작성에 참여한 극소수 인사들에게는 절대 함구령이 내려져 부인이 남편의 행적을 오해한 집도 적지 않았다. YS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드디어 우리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합니다”라고 발표하는 순간 TV를 시청하거나 회사 외부에 있던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들은 경악했다. 경제기자로서 평생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역사적 정책에 대한 ‘취재와 기사 쏟아내기’가 꽤 오래 이어졌고 그해 여름휴가는 당연히 취소됐다.

대한민국 건국 후 긍정적 영향이 컸던 3대 경제정책으로 나는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YS의 금융실명제 도입을 꼽는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직전 시행된 토지개혁은 농민들에게 신생 대한민국에 대한 일체감을 심어줘 한반도 적화를 막는 데 한몫을 했다. 1962년 시작한 일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한국은 빈곤의 굴레를 벗고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나라’로 도약했다. YS가 취임 5개월 보름 만에 대통령 긴급 재정경제명령으로 결단한 금융실명제는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대규모 부정부패가 발호할 제도적 ‘구멍’을 막았다.

지금은 금융실명제를 당연시하지만 도입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안다면 그리 쉽게 말할 순 없다. 옳은 일이라고 판단하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YS가 아니었다면 금융실명제 및 이 제도의 후속조치로 1995년 7월 시행한 부동산실명제 도입은 훨씬 늦어졌거나 어쩌면 아직도 논란이 진행 중일지 모른다.

YS 재임 말기 닥친 외환위기는 그에게 ‘멍에’로 남았다. 외환위기를 그의 책임만으로 돌리긴 어렵지만 어쨌든 YS 개인으로서도, 한국으로서도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YS 서거 후 우파 세력 일각에서는 그의 재임 기간 중 이른바 친북·종북 세력이 득세하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산업화-민주화 모두 소중하다

다른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YS도 일부 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는 급성장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암울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YS의 목숨을 건 민주화 투쟁이 젊은 시절의 필자를 포함해 자유민주주의를 갈구한 국민에게 던진 실낱같은 희망, 대통령 취임 후 단행한 금융실명제나 군의 정치개입 단절 같은 업적을 가릴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경제적 풍요 없는 정치적 자유만큼이나 자유가 결여된 풍요도 한계를 지닌다. 건국과 호국, 산업화와 부국(富國)을 이룬 지도자들의 공을 평가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약 30년 만에 마감하고 과감한 개혁을 단행한 YS 역시 전체적으로는 그늘보다 빛이 많았던 정치 지도자였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경제개혁#금융실명제#김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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