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이중잣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9년전 청와대 수석땐 “폴리스라인 지켜야”… 광화문 폭력시위엔 “경찰진압 부당” 주장만

새정치민주연합은 16일 서울 광화문 폭력시위에 대해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는지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와 함께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조사도 이뤄지기 전에 경찰의 진압이 부당하다고 규정한 셈이다. 이틀 전 전국농민회 소속 백남기 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중태에 빠진 것을 지렛대로 삼아 대정부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정부는 민생을 죽이고 국민을 탄압하는 일에 매우 유능하다. 정상적인 정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경찰의 행위가 (세월호 참사 당시) 이준석 선장의 ‘부작위 살인’과 유사하다”고 규정했다. 새정치연합은 정청래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정 최고위원은 곧바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항의 방문했다.

정치권에선 야당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531만 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그해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그때 등장한 게 촛불시위였다. 그해 5월부터 106일 동안 총인원 93만여 명이 2300여 차례 시위에 참가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하며 정권 초반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빨리 사그라지자 야권은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을 지지층 결집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여권은 이를 내심 즐기는 분위기다. 야권이 폭력시위를 옹호할수록 ‘자기모순’에 빠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2006년 5월 경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가 점점 폭력화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적 시위는 보장하되 불법시위와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와 관련해 정부가 “불법 폭력행위의 주동자뿐 아니라 적극 가담자와 배후 조종자까지 밝혀내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 대책회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주재했다. 문 대표도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수석 시절 “폴리스라인을 힘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 권리를 누리는 만큼 질서 유지의 의무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더욱이 이번 ‘광화문 시위’에선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해산된 통합진보당 잔존 세력이 시위의 한 축이었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의 정체성 시비가 다시 촉발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문재인#이중잣대#폴리스라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