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중세유럽엔 용변통을 든 장사꾼이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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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길거리의 문화사/양태자 지음/256쪽·1만5000원·이랑

중세 유럽 거리엔 뚜껑 달린 두 개의 큰 통을 메고 커다란 망토를 걸친 여인들이 활보했다. 이들은 마스크도 쓰고 있었다. 손님이 찾으면 통을 내린 뒤 뚜껑을 열었다. 이어 커다란 망토로 손님을 가렸다. 용변이 급한 이들에게 ‘이동식 화장실’을 제공하던 장사꾼이었다.

책은 거리의 장사꾼을 지칭하는 ‘아우스루퍼(Ausrufer)’의 면모를 통해 중세 유럽의 거리 풍경을 140여 점의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그동안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사랑’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 등의 책으로 중세 유럽의 이면을 소개해왔다.

거리에서 파는 물품과 제공하는 서비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했다. 파리나 베를린에는 12, 13세기 화가들이 거리의 직업을 120가지로 구분해 그린 그림이 보관돼 있다. 1700년대 파리의 물장수는 2만 명이나 됐고, 1841년 런던의 길거리 장사꾼은 5만 명에 육박했다.

집 안의 쥐를 잡아주는 쥐잡이는 쥐 잡는 솜씨를 과시하기 위해 박제된 쥐들을 몸에 걸고 다녔다. 사랑의 편지를 파는 장사꾼이 있는가 하면 부고를 대신 알리거나 경찰의 공지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대별로 거리의 장사치도 달랐다. 새벽 거리는 신선한 우유와 채소, 생선, 굴 등을 팔거나 고된 일을 해야 하는 날품팔이들을 위해 독한 술을 잔으로 파는 장사치들이 장악했다.

밤에는 야식으로 전병과 비슷한 오블라텐을 팔던 장사꾼이 돌아다녔다. 운 좋으면 모임 자리에 가서 한꺼번에 오블라텐을 팔 수 있었다. 그 대신 모임의 흥을 돋우는 노래를 불러줘야 했다. 또 밤에 집에 먼저 들어가 불을 켜주던 환등장수도 밤거리를 누볐다. 장사꾼들의 호객행위로 중세의 거리는 늘 시끄러웠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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