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된 채권으로 서민 등쳐 16억 챙긴 법무사 등 일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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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으로 거액을 챙긴 법무사 등 30여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원금을 부풀려 돈을 받아낸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최모 씨(36) 등 9명을 구속하고, 법무사 서모 씨(43)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 등은 10~20년 전 건강식품, 도서, 생활용품 등을 할부로 구매하고 대금을 갚지 못한 서민들의 채권을 원금의 2~6% 수준으로 사들였다. 이들은 2012년 3월부터 올 1월까지 이 채권의 원금 잔액을 부풀려 대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을 통해 2만 6851명을 상대로 303억 원 가량의 지급명령을 신청하고, 이를 근거로 채무자들을 협박해 16억 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들은 물품을 구매하고 돈을 덜 낸 채무자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 남은 금액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점과 대법원 전자소송시스템이 원금 등 진위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또 채무자가 소송 서류를 받고 2주 안에 이의신청 등을 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임의로 부풀린 금액이 지급명령으로 확정된다는 허점도 꿰뚫고 있었다.

최 씨 등은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법원 집행관이나 법무팀을 사칭해 전화를 걸어 주거지나 직장에 압류조치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심지어 8만 원 상당 채권으로 100만 원을 뜯어낸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합법을 가장하기 위해 법무사와 공모했다. 법무사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매월 100만~130만 원을 지불했고, 대여받은 법무사 명의로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송에 사용된 채권은 대부분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신용정보회사와 정상적인 계약을 체결하고 신용상태가 양호한 사람들을 골라 우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경찰은 전국의 채권추심업체 20곳이 비슷한 수법으로 영업하고 있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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