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은닉재산 자진신고땐 처벌 한시적 면제… 효과는 의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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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사상 첫 ‘역외세원 양성화’ 시동

한국 정부가 미국 계좌에 돈을 숨긴 한국인들의 정보를 미국 정부로부터 넘겨받을 수 있는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 발효시기가 1년 뒤로 미뤄졌다. 당초 이달부터 발효될 예정이었지만 국회가 공전되면서 법안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1년 후 발효에 대비해 10월부터 6개월 동안 해외 소득이나 재산을 숨긴 개인, 법인을 대상으로 과태료 면제 등을 조건으로 미신고액에 대한 자진신고를 받기로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미신고 역외 소득 및 재산 자진신고제도 시행 담화문’을 공동 발표했다. 최 부총리는 “해외 금융·과세정보를 본격적으로 획득하기 전에 자기 시정의 기회를 부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 자진신고하면 일부 가산세와 처벌 면제

자진신고제 시행방안에 따르면 세법상 신고의무가 있는 내국인과 국내 법인이 올해 10월 1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미신고액을 자진신고하고 관련 세금을 내면 일부 가산세, 과태료, 형사처벌 등을 면제받거나 경감받을 수 있다. 이 기간이 지난 뒤 미신고 사실이 적발되면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처벌받게 된다.

자진신고는 지방국세청을 통하면 된다. 정식 신고 전에 신고할 뜻이 있다는 의사부터 표시하려면 10월 31일까지 신고의향서를 지방국세청에 내면 된다. 다만, 당국의 조사나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은 자진신고해도 가산세 면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자진신고자는 지방국세청에 신고서류를 내면서 그동안 내지 않았던 세금과 지연이자 격인 납부불성실 가산세(1일 0.03%)를 현금으로 내야 한다. 1억 원이 넘는 납부세액은 분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2012년 해외계좌에 소득 10억 원을 은닉했다가 올해 세무조사에서 적발되면 세금과 과태료로만 5억 원 이상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자진신고하면 과소신고 가산세와 과태료가 면제돼 2억9000만 원만 내면 된다. 2억1000만 원을 덜 낼 뿐만 아니라 2년 이하의 징역 등 탈세행위에 대한 처벌을 면제 또는 감경받을 수 있다.

기재부는 자진신고를 먼저 실시한 호주의 전례를 볼 때 4조 원대의 은닉소득 및 재산을 발굴해 연간 5000억 원 정도의 세수 증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문창용 기재부 세제실장은 “미국 호주 등 15개국에서 자진신고로 세원을 상당히 확보한 바 있다”고 말했다.

○ 국회가 발목 잡은 지하경제 양성화

하지만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자진신고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협정이 발효됐다면 이달부터 바로 미국 내 한국인 계좌정보를 받을 수 있어 미신고자들 사이에서 ‘언제든 발각될 수 있다’는 압박감이 커질 상황이었다.

게다가 2017년 9월부터는 다자간 조세정보교환협정에 따라 영국 독일 버진아일랜드 라트비아 등 조세피난처가 포함된 50개국과 조세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협정의 효과가 더 커진다.

정부는 지난해 3월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에 합의한 뒤 7월 6일 협정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본회의에서 최종 비준동의하는 절차를 8월 이전에 거쳐야 했다.

하지만 외통위로 넘어간 비준동의안은 캐비닛에서 나온 적이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법안이 외통위에 회부된 7월 7일 이후 총 50일이 지나면 전체회의에 자동 상정돼야 하지만 여야는 정쟁을 하느라 외통위를 아예 열지 않아 자동 상정이 무산됐다. 외통위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은 “여름은 실질적인 휴회 기간이나 마찬가지”라며 “의사일정이 잡히지 않아 협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심재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상임위에 관련 내용이 제출됐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그동안 고의로 해외자산을 숨겨온 기업이나 자산가들에게 자진신고하라는 정부 정책이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해외계좌에 있던 돈을 빼내 적발하기 힘든 부동산 등으로 옮기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금융실명제 시행 때도 자진신고 같은 조치를 취했지만 지금도 차명 거래가 적지 않다”면서 “정부가 적발자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여 역외 탈루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철중 tnf@donga.com·손영일·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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