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동맹파 vs 균형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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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국외교

미국이냐 중국이냐. 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운명은 우리 외교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대접받으며 미국에 대해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반도는 ‘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한 미국과 지역패권을 인정받으려는 중국 간 세력 대결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4강 외교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양강(兩强) 외교의 성패가 우리의 사활적 이익의 가늠자가 된 셈이다.

미국 최고의 외교안보전략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2025년을 콕 집어 “미국이 세계 지도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중국이 동북아 지역의 안정 보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한미동맹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대비하라는 경고다. 미국은 우리에게 중대한 지정학적 요소(geopolitical factor)지만 중국은 한국에 지리(geography) 그 자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미국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7월 27일 “우리에게는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며 “미국이야말로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김 대표가 던진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화두는 박근혜 정부가 친중(親中) 노선으로 기울고 있다는 워싱턴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자 보수층을 의식한 행보다.

당장 “(집권 여당 대표가) 미중 사이에서 배타적 선택을 한 것은 외교적 무지”(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질서의 근본이 바뀌는 패러다임 변환기를 맞은 한국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를 탈피해야 한다는 ‘균형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운명적으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할 여유조차 없는 나라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일방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우리의 희망과 달리 전개될 수도 있다. 동아일보가 그 해답을 찾아봤다.  

“美 강력한 안보자산” “中 등지고 못 살아” 복잡한 외교퍼즐 ▼

美中 사이 ‘동맹 vs 균형’ 논란  
동맹파는 누구? vs 균형파는 누구?


4월 초 전남 여수의 한 호텔.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주최로 한미동맹 연구 프로세스 워크숍이 열렸다. 국립외교원의 전신 격인 외교안보연구원 시절이던 1999년부터 열리고 있는 이 비공개 워크숍은 한미동맹의 현안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 내는 것을 목적으로 1년에 두 차례씩 민관 합동으로 진행해 왔다.

이른바 동맹파의 모임이다. 이날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내용은 6월 13∼19일로 예정됐지만 메르스 사태의 여파로 연기된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복안 마련이었다고 한다. 직전에 이뤄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외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안보 부처 내에도 비상이 걸렸다.

16년 전 처음 발족할 당시에는 옛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한미동맹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나가야 하는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1차 북핵 위기가 제네바 합의(1994년)로 가닥을 잡았고 북-미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이었던 만큼 한반도 평화 체제 문제도 화두였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북-미 관계는 일순간에 얼어붙어 버렸고 2002년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함께 한미 관계도 난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동맹파의 주된 주장은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시작된 군사동맹을 근간으로 대외 정책의 틀을 짜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 외교부와 국방부 관료들이 그 중심에 있다.

중국 전문가 학자 그룹 중심의 ‘균형파’는 중국의 부상, 미중 관계-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에서 한국이 생존할 새로운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처럼 한미동맹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논리.

균형파가 중국을 중시하지만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만 한중 관계를 풀어 갈 수는 없다”는 공감대는 있다.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가까워지라는 게 아니다”라는 부분도 명확하다. 균형파는 ‘친중파’로 불리는 데 거부감이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는 “(균형파에)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친중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균형파의 주축을 이루는 중국 전문가 학자 그룹 1세대는 대부분 미국에서 중국을 공부한 70대 이상 학자다. 2세대는 미국, 대만,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중국에서 수학한 경험도 함께 갖춘 50대 이상 학자고 3세대는 주로 중국에서 학위를 받은 40대 학자들.

왜 미국인가? vs 왜 중국인가?


아산정책연구원은 4월 28, 29일 양일간 서울에서 국제 세미나인 ‘아산플래넘’을 개최했다. 주제는 ‘미국의 귀환’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로 보였던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가 틀렸다는 것이 이 회의의 대전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뜻밖에도 미국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증시 역시 사상 최대의 활황을 맞기 시작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 3.0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군사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시러큐스대 교수는 세미나에서 “중국의 군사적 역량이 증대하고 있지만 미국의 군사적 역량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책임감(commitment)은 확고하며 결코 동맹국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맹파의 눈에 미국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 최강국을 동맹국으로 삼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포기할 수 없는 외교 안보적 자산이라는 것.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의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강한 한미동맹은 한국이 주변국에 당당한 외교를 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국과의 관계 강화 역시 한미동맹이 공고한 틀에서 이뤄져야 더욱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미국은 한 지역을 보지 않고 전 세계의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넘나드는 연합(coalition)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균형파에 따르면 중국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국 경제를 무시하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미국 유럽 일본으로 대변되는 국제 경제 리더십의 빈틈을 보완할 새로운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옥 교수는 “중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장기 추세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세계 시장과 기술의 표준을 만들어 가면 한국이 중국 시장을 우회해 성장할 길을 당분간 찾기 어렵다”는 것.

아주대 김흥규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는 “중국과의 갈등을 전제한 정책으로는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안보 문제까지 미국과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중국을 고려하지 않을 때 받을 타격이 한미 갈등에서 올 타격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

“중국 경도론 위험” vs “친미 일변도 안돼”


중국이 미국의 힘을 능가하는 세계 패권국이 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중국이 머지않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농후해 보인다.

중국이 부쩍 강조하고 있는 신형 대국관계는 미국에 대해 동아시아 지역 맹주는 바로 중국이니 이 지역의 영향력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거론하며 “한반도를 신형 대국관계의 시험장(testing ground)으로 삼자”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계 질서가 아니라 지역 질서가 바뀔 때 굳건한 한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국익이 희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동맹파의 시각이다.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정경 분리의 원칙을 믿지 않는 미국은 한국이 균형외교(balanced diplomacy)를 펼치는 것에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에 의해 균형 맞춰지는(balance out)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연구소 이상현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현재의 질서를 급격히 변경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한 것은 단순히 국내총생산(GDP)이나 군사력의 우위가 아니라 국제 질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 어젠다를 추진해 나가는 힘, 소프트 파워 등에서 기인했다는 것.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을 지낸 이 실장은 “중국의 급부상을 걱정하는 것은 과거 글로벌 패권국이 보여 줬던 세련된 권력의 투사가 아니라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균형파는 중국발(發) 국제 질서의 세력 전이가 이어지는 현실에서 한국이 언제까지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얘기한다. 중국대사관 공사를 지낸 신봉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은 한국 외교의 변수가 아니라 중요한 상수(常數)”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자유주의 시장경제 확산의 ‘뉴 프런티어’(새로운 개척), 유럽이 유럽 통합이라는 비전을 내놓은 이후 현재 유일하게 세계적 비전을 표방한 국가가 중국”이라고 말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지와 바다의 실크로드)’는 중남미까지 향한다. 중국이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의 동맹국들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힘의 우위 유지가 힘들어지기 시작한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 유지를 위해 과거보다 동맹국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역사 문제보다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일 관계 개선을 압박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대표적”이라는 것. 미국 중심의 패러다임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 아시아로의 귀환 ::


2011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미국의 태평양
시대’라는 글에서 선언한 개념. 처음에는 ‘피벗 투 아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후 아시아로의 귀환으로 수정했다. 미국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는 뜻으로, 아태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 신형 대국관계 ::


2012
년 2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식화한 개념. 중국과 미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전략적 핵심
이익을 존중하자는 것. 중국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할 테니 미국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중국의 지위를 인정하라는 압박의 뜻도
담겨 있다.

:: 세력전이 이론 ::


러시아 출신 미국 정치학자 케네스 오르간스키가 정립한 이론.
패권 국가는 국제질서 정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공공재를 제공하고 패권국이 지도국의 지위를 유지할 때 안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기존
패권국 중심의 질서에 불만을 가진 국가의 국력이 급성장하여 도전 세력으로 등장할 때 불안정이 가중된다. 세력전이 현상이 일어날 때
전쟁 가능성도 높아지고 무력충돌이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 “발상의 전환… 美-中이 서로 한국을 잡아끌게 만들어야” ▼

우리 외교 현주소 동맹파의 관점 vs 균형파의 관점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한국의 정상외교도 미중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위쪽 사진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 아래쪽 
사진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03년 7월 중국을 방문해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DB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한국의 정상외교도 미중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위쪽 사진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 아래쪽 사진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03년 7월 중국을 방문해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DB
주미 대사를 지낸 한 인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시사점이 있다. 1950년 6·25전쟁에서 피를 나눈 혈맹(血盟)을 대하는 태도와 당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성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의 외교가 제대로 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는 지적. 한미동맹에 안주하다가는 큰일 난다는 담론은 결국 빨리 ‘떠오르는 태양’인 중국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처럼 들린다는 것이 익명을 요구한 이 인사의 푸념이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를 ‘친중(親中) 비미(非美) 반북(反北) 혐일(嫌日)’이라는 8자로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동맹파는 우리 정부가 중국에 대해 과연 할 말을 하는 상태냐는 부분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2000년 한중 마늘 분쟁 당시 중국에 무역 보복을 당한 이후 한국의 대중 저자세 외교는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균형 외교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이지만 핵심 외교안보 라인은 여전히 미국 편향적인 것처럼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는 “핵심 외교 라인인 외교부 장관, 제1·2차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차관보, 청와대의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대통령외교비서관, 대통령국가안보실 정책조정비서관 9명 중 7명이 외교부 북미과장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9명 가운데 중국 근무 경험자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있는데 한국의 대(對)중국 정책은 별로 없다. 중국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외교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공 vs 안보 어젠다 관리

그래서 동맹파는 연기된 한미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야 하고 그 결과 또한 성공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한미 관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회담은 아니라고 해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회담을 이뤄 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결국 한미동맹이 양자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가치 동맹으로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을 이뤄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한 의지 표명과 더불어 이른바 중국 경사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처럼 “우리에겐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워싱턴 정가에 한국이 한미동맹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것.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양국 이익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는 남중국해 등에서 자유무역 원칙이랄지 항행의 질서, 해상 경계선과 영토의 존중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중국과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균형파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론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인 반대와 불만 등 안보 관련 이슈를 적절히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드 논란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론을 중국이 수용하지 않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는 것.

문흥호 한양대 교수는 “중국 학자들은 ‘우리한테서 돈만 벌고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겠다는 것이냐’고 드러내 놓고 비아냥거린다”고 전했다. 중국 학자들은 ‘군사 안보의 주체 역량이 없는 한국이 미국 눈치를 봐도 너무 본다. 사드는 한국이 필요하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안 쓰면 되지 않느냐’라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는 “이는 중국 최고지도자부터 일반인까지 갖고 있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정서”라고 전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한중 두 정상이 표면적으로는 눈을 마주치고 소통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중 간에 정치적 신뢰의 기초가 상당히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우리 외교가 걸어야 할 길

아주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우리의 외교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안미경중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개념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이나 전략이 될 수는 없다”며 “늙어 가는 한미동맹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단 극복과 통일에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동맹을 재조정하고 역할을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며 “핵을 가진 북한의 도발을 막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최후의 보루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균형파는 미국에 지나치게 기운 운동장을 중국 쪽으로 조금만 기울이는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말한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는 “미국 대신 중국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중 관계는 냉전시대 미소 관계처럼 적대적 대결 관계가 아니라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하는 이중적 성격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미중에 대한 사안별 지지(issue-based support) 전략”을 제안했다. 미중의 정책 가운데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세련된 헤징’이다. 박 실장은 “한국이 확고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사안별 지지 전략을 구사하면 미중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을 때도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사안별로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新조선책략을 찾아서


김흥규 교수는 현재 한국에 가장 필요한 전략을 연미화중(聯美和中)이라고 본다. 지금은 중국에 한국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니 중국과의 협력 면을 넓혀 한중 간 차이를 빨리 줄여 가야 한다는 것. 주중 대사 출신인 신정승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장은 “북핵 문제는 미중이 협력할 공동 목표이니 협력이 잘 이뤄지도록 한국이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주미 대사를 지낸 최영진 연세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다고 봤다. 윤영관 교수가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

결국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불신이 깊어지는 상황이 한국의 국익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문제는 우리 외교가 중국의 꿈(中國夢)과 미국의 가치가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가 아닐까.

하태원 triplets@donga.com·윤완준 기자
#동맹#균형#한국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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