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직전 버스’ 타고 수학여행 간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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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식 1∼8년씩 위조해 전자 입찰
부산경찰청, 악덕업체 25곳 적발… 최근 4년 130개 학교 300회 운행

2010년 3월 부산 A고등학교는 2학년 학생들의 제주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A고교는 국가종합전자조달사이트인 ‘나라장터’에 입찰공고를 내고 수학여행 업무를 대행할 업체를 찾아 나섰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2005년도 이후 출고된 45인승 버스 8대가 필요하다’는 조건을 걸었다. 부산시교육청이 수학여행 전세버스를 가급적 신형으로 빌릴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입찰 결과 제주지역 B업체가 선정됐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당시 A고교가 빌린 버스는 출시된 지 10년이나 된 ‘고물’이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버스를 2006년에 생산된 것처럼 연식을 속인 것이다. 일부 버스는 1998년에 생산된 것도 있었다. 현행 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버스의 사용연한은 9년이며 안전 검사를 통과할 경우 최대 2년까지 더 운행할 수 있다.

이처럼 차량 연식을 속여 수학여행 전세버스를 대여해온 업체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2일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25개 버스업체를 적발하고 B업체 대표 김모 씨(60) 등 4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등록일로부터 5년 이내 차량’이라는 입찰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2010년 1월부터 4년 동안 연식을 짧게는 1년, 길게는 8년씩 바꿔 버스를 임대한 혐의다. 이 기간 동안 부산지역 초중고교가 실시한 수학여행 623회 가운데 절반인 300회가량이 이런 고물 버스로 진행됐다. 업체들에 속은 채 수학여행을 다녀온 학교는 130여 곳에 이른다.

김 씨 등은 학교에서 수학여행 계약을 체결할 때 자동차등록증 원본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 허점을 악용했다. 신형 차량의 등록증을 복사해 연식과 최초 등록일자를 오린 뒤, 구형 차량에 붙이거나 신차의 등록증에 노후 버스의 차량번호를 넣는 수법을 쓴 것이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버스#수학여행#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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