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이 國富 빼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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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승계과정 지배구조 약해져… 엘리엇 등 헤지펀드가 집요한 공격
경영권 방패 없어 줄줄이 당할 우려

삼성물산에 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으로 재계 전체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엘리엇이 의도한 대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이 무산될 경우 향후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엘리엇 외에도 헤르메스 인베스트먼트, 메이슨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최근 삼성정밀화학과 삼성물산 지분을 각각 5%, 2.2% 매입했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향후 삼성전자를 포함한 전 계열사가 타깃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약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무산된다면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승계 작업이 차질을 빚어 지배구조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은 현재 경영 승계 작업을 이미 시작했거나 준비 작업을 하는 단계이지만 경영권 방어는 취약한 상황이다. 기업경영평가 회사인 CEO스코어는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집단(그룹) 중 73%가 2세대에서 3세대로 승계되는 세대교체 시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국내 대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간 다양한 사업부문으로 계열사를 확장하면서 고속 성장을 이뤘지만 상대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에는 힘을 쏟지 못했다. 대부분은 오너가들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계열사의 대주주로서 그룹 전체를 경영하는 구도를 갖고 있다. 엘리엇 같은 해외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 승계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약해진 지배구조상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주자본주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국내 기업은 물론이고 그 기업이 창출할 일자리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정당”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KCC가 취득한 삼성물산 자사주(5.76%)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이날 밝혔다. 재판부는 KCC에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각하는 목적이나 방식, 가격, 시기, 상대방 선정 등이 모두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배석준 기자
#투기자본#엘리엇#헤지펀드#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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