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기업으로 세계 일류 소재기업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5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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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M 10대 히어로, 제조업 혁신 3.0 이끈다]
WPM 사업으로 이끄는 차세대 산업엔진


규모는 작지만 그 분야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작으면서도 강한 기업, 즉 ‘강소기업’들이다. 최근 소재산업 쪽에서 겉으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제조업 혁신3.0을 이룰 강소기업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함께 2010년 부터 시작한 ‘세계일류소재’(WPM: World Premier Materials) 개발사업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소재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재 10개의 WPM소재사업단에는 약 200여개의 기관이 참여하고 있는데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약진이 눈에 띈다. 작년 말까지 81개의 중소·중견기업들이 WPM사업을 통해 올린 매출은 2611억원에 달하고 일자리는 2664명이 늘었다. 이 가운데 10개의 중소기업이 지난 5년 새에 중견기업으로 진입하는 등 중소기업들의 글로벌성장 가능성이 입증되었다. 특히 차세대 산업엔진 중의 하나인 소재분야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강소기업의 출현은 ‘제조업 혁신3.0’을 이룰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WPM 슈퍼사파이어단결정사업단]
사파이어테크놀로지, 세계 시장 ‘빅 3’에 진입
중소기업으로 사업단 이끌며 중견기업으로 성장 중


(주)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공업용 인조 사파이어를 제조하는 회사다. 이 기업은 중소기업이지만 그 역량을 인정받아 5년째 ‘WPM 슈퍼사파이어 단결정 소재사업단’을 총괄하고 있다. 한솔테크닉스와 서울반도체 등 14개 기업 등과 함께 협력,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잉곳(ingot)이라는 분야에서 지난 5년 간 세계 최초의 기술개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잉곳은 어떤 형상을 가공 처리할 목적으로 만든 덩어리를 말한다. 이 덩어리를 얇게 가공하여 LED용 기판소재와 스마트폰 보호유리 등 첨단제품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를 만든다.

잉곳 제작에 있어 기술적인 핵심은 크기에 있다. 크면 클수록 용도가 많아지고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업단과 함께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하면서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수평온도구배법’(VHGF) 이라는 독자 기술을 활용해 200mm 크기의 대구경 잉곳을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다른 경쟁업체들은 150mm까지 사업화했지만 200mm 는 실험실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생산효율 역시 78%로 높아져 기존에(약 50%)에 비해 약 50% 이상 높은 효율을 달성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2014년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15∼20%로 세계적인 기업들 가운데 ‘빅 3’에 해당하는 실적으로 탄탄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의 최종 목표는 300mm 잉곳 제작이다. 이 기술이 성공할 경우, 세계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WPM 바이오메디컬소재사업단]
중소 벤처기업들의 공동연구
미래 의료시장 선점 위한 고군분투


바이오 메디컬 소재는 질병의 관리와 진단, 치료 기능을 갖는 생체의료 소재를 말한다. 새로운 의료 기술의 출현을 유도해 기존 생체 소재로 대응할 수 없는 새로운 분야의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세계 미래 의료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다.

사업단은 대기업 참여 없이 모두 중소, 중견기업들로 이뤄져 있다. 9개의 중견·중소기업과 8개의 연구소, 대학 총 17개의 기관들이 힘을 합쳐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첨단 바이오 메디컬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사업단이 도전하는 바이오 메디컬 소재는 의약품 중간체, 식품 등의 주원료인 ‘비천연 아미노산’과 근골격계 질환 및 피부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조직질환 치유용 단백질 소재’, 골 손실이 없는 ‘미래 선도형 임플란트’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매출액 1.1 조원의 경제 유발 효과와 함께 3700여명의 고용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사업단은 지금까지 비천연 아미노산 20종과 보호기 아미노산 18종에 대한 제조공정 개발 및 펩타이드1종의 제품화를 완료했다. 또한 조직질환 치유용 단백질소재 6종 중 3종에 대한 대량생산 공정 개발을 확립하고 1종에 대해서는 제품 상용화도 이뤘다.

적응성,기능성 임플란트 소재에서는 골조직과 유사한 고강도 저영률 신합금을 개발 중에 있으며, 골 조직의 능동적 활성화를 위한 방출기간 4개월 이상인 약물 담지체를 개발하였다. 이러한 기술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2010년 보다 기업 매출이 64% (3106억원→4818억원) 성장하였다.

주요 수출 대상 국가들에 대한 인증 획득이 마무리되면 새로운 해외시장 창출과 더불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의 기술력과 중소기업의 열정이 동반성장의 열매로 나타나

신소재 기술은 특성상 개발 리스크가 크므로 사업화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참여해 중소기업을 이끌어주는 상생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WPM사업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밀착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설계해 중소기업에 적합한 새로운 개발 아이템을 발굴하고, 이를 사업화와 연계할 수 있도록 시장 적용과 검증을 도와주는 협력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신개념 기술 개발을 고민하던 ㈜제이오는 나노카본복합소재 사업단에 합류하면서 새로운 계기를 만났다. LG화학과 만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 사업단의 협조로 나노튜브 원료를 100분의 1 수준으로 압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프리미엄케톤소재사업단의 경우 신기인터모빌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효성이 개발한 프리미엄 케톤을 자동차부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효성 등 대기업과 협력해 프리미엄 케톤 소재를 수요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신차에 접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플렉시블디스플레이용기판소재사업단의 경인양행은 코오롱중앙기술원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 바니쉬를 개발하고 있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배리어필름을 개발 중인 아이컴포넌트는 LG화학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모바일 디스플레이 및 퀀텀닷 (Quantum Dot) TV 시장에서의 매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 SMS는 삼성전자종합기술원, 삼성SDI와 함께 불투명 폴리이미드 바니쉬를 개발 중이다.
대,중소기업 각자의 역할 효율적 분담
WPM 협력 시스템은 진화 중

고성능이차전지소재사업단에서는 소재업체와 수요기업 사이에 활발한 기술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소재 전문 중견기업인 엘앤에프신소재와 한국유미코아 등이 소재를 개발해 수요기업인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등에 제공하면, 이들 대기업은 제공받은 소재 샘플을 전지에 적용하여 평가하는 역할을 맡고있다.

개발된 소재에 대한 평가와 품질개선 방향은 기술교류를 통해 수시로 협의되고, 다음 연구 계획에 반영된다.

전지소재업체들은 설비업체인 디엔텍과 중간 원료 생산업체인 이엔드디 등과 협력하여 생산공정 최적화와 중간원료의 저가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능형멤브레인소재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이엠코리아, 에어레인 등의 기업들도 애경유화와 KIST, 경상대 등의 연구팀과 함께 정전기로 인한 항공기 폭발방지용 질소발생기(OBIGGS)를 만들기 위한 신소재를 개발 중이다.

애경유화에서는 질소와 산소를 분리하는 고분자 수지를 생산하고, 중견기업인 에어레인에서는 생산된 수지로 분리막과 막 모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이엠코리아에서는 항공기 제작사의 요구 성능에 맞춰 최종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시제품을 개발한 상태로 성능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스마트강판소재사업단의 벡터필드코리아는 기술력에 비해 산업 현장의 실무 경험이 부족했다. 이 문제를 지난 5년간 주관기관인 포스코와 경험을 주고 받으며 해결하고 있다.

현재 벡터필드코리아는 열 해석과 최적설계, 제어·계측자동화 등과 관련된 핵심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로 변신 중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 분담은 초고순도SiC사업단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초고순도 SiC 소재는 분말, 세라믹 소결체, 단결정, 에피웨이퍼의 4가지로 구분 할 수 있으며 기술 개발 공정도 매우 어렵다. 사업단은 4개 과제로 역할 분담을 확실하게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에피웨이퍼의 경우, 주성엔지니어링에서 에피웨이퍼를 제조할 수 있는 CVD 장비를 개발, LG이노텍이 에피웨이퍼 소재를 개발, 메이플세미컨덕터에서 에피웨이퍼를 이용한 반도체를 제작하고 마지막으로 현대자동차에서 제작된 반도체 소자의 신뢰성 평가를 진행하는 공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권순기 소재부품전략위원회 위원장 (現 경상대학교 총장) 인터뷰

WPM사업단은 대·중소기업간 상생과 발전을 위한 플랫폼

권순기 소재부품전략위원회 위원장 (現 경상대학교 총장)
권순기 소재부품전략위원회 위원장 (現 경상대학교 총장)

산업통상자원부가 2010년부터 시작한 ‘세계일류소재’(WPM: World Premier Materials) 개발사업의 핵심 성과 중 하나는 지난 5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했다는 점이다. 완제품 시장과는 달리 소재시장은 소수의 선진국이 핵심 기술력을 무기로 독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어 시장 진입이 쉽지 않았다.

특히 소재산업 분야는 개발 리스크가 높아 대기업도 장기 투자를 주저하는 분야다. 이에 정부는 산업생태계가 밀접하게 연계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시스템을 갖춘 WPM사업을 시작했고, 사업 시작 5년 만에 시장지배력을 갖는 소재를 개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
현재 경상대 총장이자 정부의 소재부품전략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권순기 위원장은 지난 5년간의 대표적인 성과에 대해 “WPM 사업이 능력있는 소재전문기업들을 키워내고 관련 기관들과의 협력시스템을 통해 소재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든든한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성과가 가능한 이유로 “WPM 사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을 통해 상생, 발전하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우수한 인력과 장비로 적합한 기술을 제공하고, 중소기업은 실제 생산기술을 개발하며, 사업단 내에 속해 있는 수요기업들이 이를 제품에 적용, 테스트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글로벌 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WPM 사업이 지금까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출범 당시 플랙시블 디스플레이용 소재사업단은 LCD와 OLED용 핵심소재를 함께 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트렌드는 빠르게 변했고 글로벌 시장은 OLED를 원했다. 사업단은 그동안 투자했던 LCD용 소재개발을 중단하였으며 개발목표를 OLED에 집중하도록 과감히 수정했다.

반면 저가의 일산화탄소와 올레핀으로부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프리미엄 케톤 소재사업단의 경우 첫 시작은 매우 불투명했다. 미국과 일본의 선진 화학업체들이 수십 년 간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고도 기술확보가 어려워 상업화에 실패한 소재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업단 출범 당시 터무니없는 목표가 아니냐며 부정적인 시각과 우려의 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효성이 세계 최초로 ‘탄소저감형 프리미엄 케톤 소재’ 개발에 성공하면서 세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이처럼 WPM사업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모두 소재산업 발전에 큰 교훈이 되었다”고 회고하며 “앞으로도 세계 소재시장의 기술트렌드를 적극 반영하여 대응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며 WPM 사업이 창조 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R&D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과감한 투자를 통해 매출과 고용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동영 전문기자 kdy1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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