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세 150色… 이상한 나라의 수많은 앨리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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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생일… 책 출간 붐 타고 ‘삽화 전쟁’


“오늘 해준 이야기를 책으로 써 주세요.”

1862년 7월 4일 영국 템스 강 줄기 ‘디 이시스’. 뱃놀이를 마친 후 소녀는 신사를 졸랐다. 이날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였던 루이스 캐럴(1832∼1898)은 학장 헨리 리들의 세 딸과 뱃놀이를 했다. 세 딸 중 한 명인 앨리스 리들은 캐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요구했고, 캐럴은 토끼 굴로 떨어진 후 이상한 나라에서 모험을 하게 된 소녀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줬다.

이후 캐럴은 소녀의 요구에 따라 책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직접 삽화를 그렸지만 분량이 늘어나자 그림 작가 존 테니얼(1820∼1914)과 의기투합해 공동작업을 했다.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하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1865년 발간됐다.

○ 새로운 앨리스를 그려라

올해는 ‘앨리스’가 발간된 지 150년 된 해다. 특히 앨리스가 세상에 ‘태어난’ 7월 4일을 기념해 출판계는 앨리스 띄우기에 한창이다. 도서출판 사파리가 ‘앨리스’와 후속편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합친 특별판을 내는 등 최근 다양한 판본이 출간됐다. 예스24, 인터파크, 등 대형 서점도 앨리스 기획전을 열고 있다.

출판사들은 새로운 앨리스 이미지를 강조한다. 7일 창비가 내는 ‘앨리스’는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1914∼2001)이 그린 삽화를 담았다. 그는 예쁜 원피스와 단정한 구두를 신은 기존 앨리스 대신에 하얀 원피스에 생머리를 한 자유로운 앨리스를 표현했다. 배경도 엉뚱하고 기묘한 ‘이상한 나라’ 묘사 대신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문학수첩은 모던 아티스트 구사마 야요이가 특유의 도트 무늬로 그린 앨리스 판본을 발간한다.

○ 앨리스 그리기 150년 전쟁

앨리스는 이야기 자체가 독창적이면서 상상력을 크게 자극해 그동안 수많은 화가의 그림 소재와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 영국 그림 작가 아서 래컴은 섬뜩할 정도의 광기를 앨리스에 담았고, 영국 화가 머빈 피크는 검은 선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윌리 포가니, 마리아 커크 등 수많은 유명 작가가 다섯 살 앨리스를 장난스럽거나 푸근하거나 성숙하게 그려냈다.

국내 발간된 앨리스 판본 중에는 그림동화 작가 앤서니 브라운, 헬렌 옥슨버리 작품의 호응이 높다. ‘곰 사냥을 떠나자’로 유명한 옥슨버리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흰 운동화를 신은 친근한 앨리스를, 오스트리아 일러스트레이터 리즈베트 츠베르거는 수채화와 파스텔 색감의 앨리스를 연출했다.

국내 작가가 그린 앨리스도 있다. 인디고 출판사는 성인 취향에 맞춰 앨리스 이미지를 현대화했다. 김민지 작가는 “장난기도 있고, 항상 ‘왜?’라고 물어보는 호기심 많은 여자아이를 표현했다”고 말했다.

수많은 ‘앨리스’가 있지만 여전히 원작자 존 테니얼을 넘어선 그림은 없다는 것이 문학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테니얼의 삽화가 들어간 ‘앨리스’(비룡소)가 압도적으로 많이 출간됐다. 동아일보가 교보문고와 함께 국내 출간 ‘앨리스’ 누적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1위 역시 테니얼의 ‘앨리스’였다. 그의 그림에는 귀여운 소녀이면서 약간 신경질적인 앨리스의 표정이 가장 잘 살아있다. 테니얼의 ‘앨리스’가 많은 데는 저작권 보호 기간을 ‘작가 사후 50년’으로 정한 국제저작권협약에 따라 ‘앨리스’의 저작권이 사라진 점도 한몫했다. 앨리스의 모델이 된 앨리스 리들이 흑발인데도 테니얼이 앨리스를 금발로 그린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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