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그 소녀, 박소담 “큰 화면에 나오는 내 얼굴 어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일 11시 34분


코멘트
감정을 섬세하게 내비치는 쌍꺼풀 없는 눈,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앳된 얼굴, 그리고 낮고 힘 있는 목소리.

18일 개봉한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그 소녀’를 궁금해 할 것이다. 따돌림 당하는 주인공 주란(박보영)을 따뜻하게 감싸면서도 자신이 지닌 비밀을 힘겨워하는 기숙학교의 급장 연덕 역을 맡은 배우 박소담(24) 얘기다.

“큰 화면에 내 얼굴이 계속 나오는 것이 어색했다. 아직 적응 중”이라는 박소담은 회사원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아래서 삼남매 중 맏이로 자랐고, 추운 겨울에도 운동화를 신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극히 평범한 소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본 뒤 며칠 동안 계속 가슴이 뛰어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도 크게 색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해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졸업하는 사이 무려 단편영화 15편과 연극 여러 편에 출연한 에너지는 범상치 않다. 장편영화 출연작도 벌써 10편이 넘는다. 지난해 ‘일대일’(연출 김기덕) ‘상의원’(연출 이원석) 등에 조연으로 얼굴을 비쳤고 올해는 첫 주연작 ‘경성학교’ 외에도 ‘베테랑’(연출 류승완) ‘검은 사제들’(연출 장재현), ‘사도’(연출 이준익) 등에 출연한다. 벌써부터 박소담이 ‘올해의 신인’으로 점쳐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배 연기자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빛내며 줄거리와 감정의 낙차가 큰 ‘경성학교’에 안정감을 불어넣었던 그를 12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주연작이다. 기분이 어떤가.
“큰 화면에 내 얼굴이 계속 나오는 걸 보는 게 어색했다. 3개월 정도 연덕으로 살았는데 30분짜리 졸업작품에 출연한 뒤로 이렇게 오래 한 역할로 촬영한 건 처음이었다. 아직 적응 중이다.”

-달리거나 뛰는 장면이 많고 수중촬영까지 했다. 촬영이 힘들지는 않았는지.
“어릴 때 별명이 치타였다. 초등학교 때 멀리뛰기 선수를 했었는데 송파구 전체에서 2등을 한 적도 있다. 매일매일 연습할수록 느는 게 재미있었다. 연덕 역도 달리기와 멀리뛰기를 잘 하는 역할이어서 이번에 다시 연습했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본 뒤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1년이 넘게 반대하셨다. 그래도 계속 하고 싶다고 하니 고2 끝날 무렵에 연기학원에 보내주셨다. 학교 수업이랑 달리 연기 학원 수업은 몸을 많이 쓰는 게 재미있었다.”

-단편영화에 굉장히 많이 출연했다.
“2학년 때부터 출연하기 시작했다. 학기 중에도, 방학 때도 늘 영화촬영을 하거나 연극연습을 했다. 여행도 한번 가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 졸업한 게 나 뿐이어서 좀 외롭기도 하다. 학교생활을 너무 즐기지 못한 건가, 하는 아쉬움도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이렇게 장편영화에 계속 출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출연했던 단편을 보고 연락을 주시기도 하고, 촬영장 분위기에도 더 잘 적응할 수 있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여배우의 외모는 아니다.
“사실 한예종 입학할 때까지는 연극이나 뮤지컬이라면 몰라도,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흔히들 말하는 이목구비 뚜렷한 연예인 외모가 아니니까.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한테 ‘무대화장 진하니까 화장하면 다 달라져, 눈 크게 만들 수 있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럼 친구들이 ‘소담아, 너 같은 눈의 시대가 언젠가는 꼭 올 거야’라고 위로해줬다. 그런데 대학 입학 때 낸 증명사진 한 장을 보고 처음 영화 출연 문의가 왔다. 굉장히 의외였다.”
-성형수술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
“이상하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내 얼굴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어려서부터 인정하니까 굳이 부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내가 가진 걸 살려야지, 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이 나이에 내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

-맡은 역할 중에 유난히 10대 소녀 역할이 많다.
“단편 때부터 10대 역할을 계속 했었다. 특히 아픈 사연은 많지만 그걸 안에 담아두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역할이나, 아니면 귀신같은 것에 쓰인 역할을 많이 맡았다. 나한테 평범하면서도 뭔가 묘한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베테랑’ ‘검은 사제들’ 등 출연작이 잇달아 개봉한다.
“‘베테랑’은 학생 때 출연한 단편영화 ‘수지’를 본 류승완 감독님이 오디션을 보라고 해 캐스팅됐다. 신인 여배우 역할인데 배역 이름도 ‘앳된 막내’다. 처음에는 좀 순수하게 나오다 나중에는 조금씩 변한다. ‘검은 사제들’에서도 소녀 역할인데 삭발을 처음으로 해봤다. 지금도 머리가 아주 짧은 상태다.”

-여자한테 머리카락은 꽤 의미가 깊은데 삭발할 때 겁이 나진 않았나.
“처음에는 당연히 고민이 됐다. 그런데 엄마한테 ‘삭발해도 괜찮을까’하고 여쭤봤더니 엄마가 ‘머리는 또 자라잖아’ 하시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아, 그렇구나’ 싶어 편하게 결정했다. 지금은 조금 자란 상태인데 주변 사람들이 여전사 느낌이 난다, 평소 박소담과 달라 보인다는 말을 해준다. 이 머리로도 맡을 역할이 또 있을 텐데 머리가 자라는 게 아깝다.”

-액션 연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전에도 싸움 잘하는 역할로 나온 적이 있지 않나.
“‘플레이 걸’에서 액션 연기를 한 적이 있고 ‘수지’에서도 싸움 잘 하는 여고생으로 나왔었다. 그때는 촬영 환경이 아무래도 열악하다보니 좀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더 제대로 된 액션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배우로서 목표가 있나.
“지난해는 박소담을 준비하는 한 해였다면 올해는 결과물이 나오는 해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이 그냥 이런 배우가 있구나 하는 것만 알아주셔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이 배우의 연기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그건 당장 눈앞의 목표이고, 배우라는 일 자체에 대한 더 큰 목표가 있나.
“배우는 여러 개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삶에도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금의 저에게 맞는 역할을 연기하고, 30대, 40대, 자연스럽게 나이 들면서 그 때의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60대 때는 지금 역할을 못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최대한 지금을 즐기고 싶다.”

-갓 데뷔한 신인인데 60대까지 바라보는 건가.
“농담처럼 못 걸어 다닐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 대사를 못 외우게 될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꿈이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