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産 슈퍼 비아그라의 미스터리한 효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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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노년이 먹으면 정력이 세지고, 아이가 먹으면 성장호르몬이 많이 분비된다.”

북한 외국인용 잡지에 최근 실린 정력제 광고 내용이다. ‘체력활성 영양알’이란 상표가 붙은 이 약의 효능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근육 강화, 학습 집중력 제고, 피곤 해소, 멀미와 빈혈에 특효, 안정적 숙면 보장” 등 다양하다. 이에 영국 데일리메일은 15일 ‘김정필: 북한의 슈퍼 비아그라’라는 기사를 썼다. 김정필은 ‘김정은’과 ‘알약(pill)’의 합성어다. 물론 기사는 “정력 강화와 잠에 곯아떨어지는 효과는 아마도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등 비아냥 일색이다.

나도 광고를 보고 이 좋은 약을 김정은은 챙겨 먹는지가 궁금해졌다.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정성제약공장을 시찰했는데, 이 공장에서 비아그라가 생산된다. 이왕 간 김에 약 먹는 장면까지 연출했다면 그만한 광고가 어디 있을까 싶다. 참, 좋은 소리 다 적으면서 남쪽 사람들이 솔깃할 ‘살까기(다이어트의 북한 말)’ 효능이 있다고는 왜 적지 않았을까. 차마 못쓰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만약 근력 강화 효과가 정말 있다면 외국산 근육 강화제를 먹고 호르몬 부작용을 앓는다는 김정철은 참 억울하겠다. “진작 이런 약이 나왔다면 지금쯤 ‘위대한 영도자 김정철 동지’가 됐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래도 이번 광고는 북한의 원조 슈퍼 비아그라라고 할 수 있는 ‘네오비아그라 Y.R.(북에선 ‘청춘1호’라고 소개한다)’ 설명서보다는 노골적이지 않다. 네오비아그라의 설명서에는 ‘2차 이상의 성교 시 발기복귀시간이 15분 주기로 짧아 남녀가 원하는 대로 4∼8회의 연속되는 성교를 실현할 수 있는 다회성기능부활제. 발기지속시간 24∼36시간. 피로감은 1회 성교와 6회 성교가 같습니다. 피로가 회복되며 활력이 넘칩니다’라고 적혀 있다. 설명서에 나와 있는 여성 성기능 개선 효과까지 적으려니 민망해서 여기서 그만. 여기에다 “콩팥염 허리아픔 어깨아픔 간염 관절염 뇌동맥경화증에도 효과가 있으며 부작용은 전혀 없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약을 2006년 당시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분석해 보았더니 중금속과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수은이 기준치의 7.5배가 나왔고,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는 디아제팜도 검출됐다. 당시만 해도 평양과 금강산을 가는 남쪽 사람이 많을 때였다. 방북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북한 기념품 가게에서 아리따운 여성 안내원이 “선생님, 이 약 한번 드셔 보시라요. 정력이 끝내줍니다” 하며 붙잡던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남쪽의 분석 결과 발표 이후 북한은 잇달아 신제품을 내놓았고, 생약 성분으로 만들어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상표명도 ‘양춘삼록’ ‘청활’ ‘천궁백화’ ‘네오비아그라’ 등 다양하다.

요즘 이런 슈퍼 비아그라는 북한의 주력 외화벌이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북한은 만병통치 건강식품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다수가 정력제 기능을 강조하고 있어 비아그라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런 약들은 해외 북한 식당에서 예외 없이 팔고 있다. 술 팔고 약 팔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원가를 알 수 없는 캡슐 하나가 5달러 이상에 거래된다.

중국 러시아 동남아지역이 요즘 북한산 비아그라의 집중 공략지이다. 지난달 방글라데시 다카의 북한 식당 여성 지배인이 비아그라와 술을 불법 판매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런 북한을 보면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한국에 건너온 조선족들이 백두산에서 나는 특효 명약이라면서 웅담이니 녹용이니 경쟁적으로 갖고 왔던 것이 연상된다. 조선족들이 북한에 가면 “내가 왕년에 웅담 좀 팔아봤는데 말이야” 하며 할 말이 많을 듯하다.

북한이 비아그라와 건강식품을 내세우며 약장사하는 걸 보면 솔직히 진짜 웃기는 일이다. 성교육은 고사하고 영화 속 키스 장면조차 허용되지 않는 곳, 주민 건강상태는 세계적으로도 열악한 북한이 믿기 힘든 슈퍼 비아그라와 건강식품을 개발했다니 말이다.

어머니날까지 새로 만들며 출산을 독려하는 것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피임도 힘들고, 낙태는 허용조차 안 되는데, 36시간 효능이 유지된다는 저 슈퍼 비아그라를 남녀노소에게 나눠주면 북한에 아기 울음소리가 넘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진짜 효능이 있다 해도 문제이긴 하다. 살림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은 작은 집에 부모 자식 3대가 함께 사는 게 일반적이다. 네오비아그라를 먹고 도대체 어찌 살라는 건지…. 특히 젊은 연인은 절대 복용 금지. 북한엔 모텔도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비아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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