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 목숨담보로 달리는 불법셔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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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과속-신호무시 무법질주… 기사들, 택시비 아끼려 ‘울며 겨자먹기’ 이용

6일 오전 3시경 서울 서초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한 대리운전사가 경기 광명행 대리 셔틀에 오르고 있다. 차량 앞 유리 조명장치에 셔틀의 출발지와 도착지가 표시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6일 오전 3시경 서울 서초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한 대리운전사가 경기 광명행 대리 셔틀에 오르고 있다. 차량 앞 유리 조명장치에 셔틀의 출발지와 도착지가 표시된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앞 유리에 빨간 네온등을 켠 채 도로를 질주하는 승합차를 보고 휴대전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내 승합차는 ‘빵’ 하고 응답한 뒤 인도 옆에 차를 세웠다. “수원행입니다.” 운전자는 목적지를 확인시켜 준 뒤 곧장 출발했다. 14일 밤 12시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일대에서 영업 중인 ‘대리 셔틀’의 모습이다.

대리 셔틀은 먼 거리를 오가는 대리운전사들이 이용하는 전용 승합차다. 여객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영업용으로 등록되지 않은 차량이 돈을 받고 승객을 태우는 것은 엄연한 불법. 하지만 최근 들어 대리운전사 수가 급증하면서 대리 셔틀을 운영하는 전문회사까지 등장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대리 셔틀의 출발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날 취재팀이 강남대로 일대를 살펴보니 흰색 자가용 번호판을 단 승합차 수십 대가 대리운전사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앱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서초구 교보타워에서 출발하는 대리 셔틀 노선만 47개. 요금은 목적지에 따라 2000∼3000원 선.

오전 1시경 지하철 신논현역에서 경기 성남시 서현역으로 가는 대리 셔틀에 직접 타 보니 도착하기까지 불과 28분이 걸렸다. 다른 대리운전사를 내려 주느라 지체한 시간을 제하고 두 곳의 거리가 26km인 점을 감안하면 심야 시간에 줄곧 시속 85km 이상으로 달린 셈. 과속과 신호 무시는 기본이고, 불법 유턴에 방향등도 켜지 않은 채 다른 차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일쑤였다. 승객들은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대리 셔틀 운전자는 회사 관계자와 무전기로 교신을 주고받으며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량 내부도 불법 개조해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15년이 훌쩍 지난 12인승 승합차는 좌석을 늘려 16명 이상이 타도록 개조됐다. 임시로 설치된 좌석엔 안전벨트도 없었다. 같이 탄 대리운전사 A 씨는 “금요일 밤처럼 승객이 많을 때는 간이 의자는 물론이고 바닥에 앉아서 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사들은 이 같은 위험성을 알면서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대리 셔틀을 이용한다. 대리운전사 B 씨는 “서현역에서 강남까지 대리비가 2만 원, 택시를 타고 다시 돌아가면 1만8000원을 내야 해 남는 게 없다. 셔틀이 낡아 불안하지만 매일 3번 이상 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리운전사는 “3000원만 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리운전사가 아닌 일반인도 대리 셔틀을 이용하곤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본보 기자는 운행 중 술 취한 40대 남성이 대리 셔틀에 타는 것을 목격했다.

경찰은 “심야에 운행하는 데다 외형상 일반 승합차와 차이가 없다. 단속에 나서면 노선 정보가 표시된 앞 유리의 조명을 꺼 이를 피하는 경우가 많아 적발이 어렵다”며 “사고가 나면 승객들은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치료비 전액을 스스로 떠안을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리운전사들은 “대리 셔틀이 사실상 대리운전사들의 유일한 이동 수단인 상황에서 대안 없이 단속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 대리운전사는 “당국이 대리운전사들의 택시 합승을 허가해 택시비를 나눠 내게 하면 교통비 부담이 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토교통부는 대리운전업이 운수업이 아닌 자유업인 만큼 대리기사협회와 업체가 자율적으로 대안을 찾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리기사협회가 영업용 차량으로 회원제 셔틀버스를 운영하면 불법 셔틀 이용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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