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김기사’ 대박 신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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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사∼운전해∼’는 MBC TV 개그프로그램 ‘개그야’가 낳은 히트 유행어였다. “어디로 모실까요?”(김 기사) “여의도 쌍둥이 빌딩으로 가.”(사모님) “다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김 기사) “김 기사, 누가 형인지 물어보고 와.”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다. 운전에 서툰 여성을 뜻하는 ‘김 여사’라면 길을 척척 찾아주는 ‘김 기사’가 더욱 필요하다.

▷‘김 기사’ 이름을 본떠 만든 내비게이션 앱 ‘김기사’는 가입자 1000만 명에 월평균 길 안내 건수가 1억2000만 건이나 돼 ‘국민 내비’의 타이틀이 붙었다. 김기사는 독특한 벌집 모양에 담긴 장소를 터치만 하면 막히는 길을 피해 가장 빠른 길을 실시간 증강현실(AR)을 통해 안내해 준다. 특정 장소나 폴더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전송해 길 안내를 받을 수 있고 차량 전면 유리창에 길 안내 화면을 반사시켜 볼 수도 있다.

▷김기사를 만든 벤처기업 ‘록앤올’이 지난주 626억 원에 다음카카오에 매각돼 모처럼 ‘벤처 대박’을 터뜨렸다. 록앤올 창업자 박종환 김원태 공동대표와 신명진 부사장은 동아대와 부산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동기생이다. 복잡한 서울 길을 찾느라 헤매던 ‘부산 촌놈’들은 2004년 ‘포인트아이’라는 벤처기업에서 함께 일하며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개발했다. 회사가 내비 사업을 정리하자 그동안 쌓은 기술과 노하우가 아까웠던 이들은 2010년 퇴직금으로 받은 5000만 원씩을 투자해 록앤올을 창업한다.

▷돈방석에 오른 이들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과정은 여느 벤처기업이 그렇듯 시련의 연속이었다. 내비 앱은 KT나 SK텔레콤 등 거대 이동통신사들이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수익성이 높지 않았다. 투자자도 없어 한동안은 중소기업진흥공단 돈을 빌려 회사를 운영했다. 그럼에도 가장 빠른 길을 가장 빨리 업데이트한다는 핵심 가치에 집중해 도로 체증에 지친 운전자들을 끌어들였다. 좌절을 모르는 끝없는 도전정신이야말로 벤처기업이 성공하는 비결임을 김기사의 대박신화가 다시 확인해줬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김기사#내비게이션#록앤올#다음카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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