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래스카의 여름’… 다가올 겨울 준비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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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첫 간담회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28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가총액을 현재 11조 원에서 2018년 30조 원대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28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시가총액을 현재 11조 원에서 2018년 30조 원대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제공
“현재 한국의 석유화학·에너지 산업은 ‘알래스카의 여름’을 지내고 있다. 녹음(綠陰)이 울창한 건 잠시일 뿐 다시 경영 환경이 얼어붙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에게 겨울은 새로운 기회를 발굴할 수 있는 ‘절호의 위기(good crisis)’가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SK이노베이션 사장에 선임된 정철길 사장은 28일 취임 후 6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하며 “현재 11조 원인 기업가치(시가총액)를 2018년 30조 원대로 키워 국내 시총 순위를 현재 25위에서 2018년 3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글로벌 톱 30위(시총 기준)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 정 사장의 ‘절호의 위기’론

알래스카도 7, 8월엔 기온이 35도까지 오른다. 그러나 9월 초부터 눈이 내린다. 즉 지난해 37년 만에 적자(2246억 원)를 낸 SK이노베이션이 올해 1분기 3212억 원 흑자를 낸 것은 ‘반짝 여름’이었다는 게 정 사장의 분석이다.

정 사장은 현재 경영환경을 ‘구조적 위기’로 진단했다. 중국 저성장과 유럽 불황에 따른 수요 부족, 미국 셰일가스 혁명과 글로벌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중국, 인도, 중동의 정제설비 규모는 2008년 하루 2000만 배럴에서 2018년 3000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사장은 “수출형 사업구조를 지닌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생존 위기에 몰렸다”며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통폐합에 내몰린 일본이나 정제시설 해체(스크랩)에 나선 호주처럼 ‘절벽에 매달린 아슬아슬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원개발은 미국으로, 석유화학은 중국으로

우선 정 사장은 ‘미국·중국 인사이더’ 전략을 내걸었다. 정 사장은 “지난해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미국 셰일가스·오일 생산광구 업체들이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다”며 “하반기(7∼12월)부터 광구지분이 본격 매물로 나오면 인수해 북미 기반 자원개발(E&P) 사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유화학 사업은 중국을 집중 공략한다. 정 사장은 “중국 최대 국영석유회사 시노펙과 합작해 중국 우한(武漢)에 설립한 나프타분해공장(NCC)은 가동 첫해인 지난해 233억 원, 올해 1분기 836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며 “이 밖에 화학 분야에서는 고부가가치 폴리에틸렌 브랜드인 ‘넥슬렌’, 고급 윤활기유 브랜드인 ‘유베이스’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정유부문에선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란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이란산 콘덴세이트(천연가스에서 나오는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를 도입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산 콘덴세이트도 일부 수입해오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도 확대한다. 정 사장은 “유럽의 한 자동차회사에 배터리 납품 물량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이는 현재 수주량의 약 3배이며, 내년 납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차세대 셀 기술을 확보하고 베이징(北京)기차, 베이징전공과 합작해 설립한 ‘베이징 BESK 테크놀로지’를 통해 베이징기차에 납품 중인 전기차 배터리 규모를 2017년까지 2만 대로 늘릴 계획이다.

재무구조 개선 계획도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3월 말 기준 순차입금은 6조8000억 원이다. 정 사장은 “올해 6조 원 이하로 줄일 계획”이라며 “SK인천석유화학의 유휴 부지와 포항물류센터 등 비핵심자산을 매각하고 SK루브리컨츠 기업공개(IPO)를 통해 재무구조를 안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이 18년 만에 단행한 특별퇴직에 관해 정 사장은 “이해할 수 있는 시간 내 특별퇴직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활발한 해외 행보…글로벌 사업 탄력 받나

정 사장은 최근 활발한 해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 사장은 12일 인도네시아 최대 국영 석유사인 페르타미나를 방문해 드위 수트집토 최고경영자(CEO)와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08년 페르타미나와 합작해 완공한 윤활기유 공장에서 하루 9000배럴의 윤활기유를 생산하고 있다. 하루 전엔 싱가포르 법인을 방문해 시장 상황을 보고받았다. 20일엔 중국 베이징 BESK 테크놀로지를 방문해 주주사의 경영진들을 만나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 사장은 간담회에서 해외 사업과 관련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그는 “특히 중국과 중동에서는 대형 사업의 물꼬를 트려면 기업 총수가 직접 가 최고위 인사를 10분이든 20분이든 만나야 한다”며 “중국 우한 공장도 최 회장이 10여 년 공을 들인 끝에 시노펙이 아시아 회사와 합작을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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