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속여 26억 미등기 토지 가로챈 70대, 14억에 팔았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1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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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속여 26억 원 상당의 미등기 토지를 가로챈 사기범이 경찰에 붙잡혔다.

28일 서울 서부경찰서는 부동산 브로커 김모 씨(78)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오랫동안 미등기 부동산과 무연고 부동산을 찾아낸 뒤 후손들에게 땅을 찾아주겠다고 접근해 소송을 알선해 왔다.

그러다 2011년 경기 고양시에 있는 1만 3000여㎡ 부지가 1910년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거쳐 획정·배분된 ‘사정토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법원을 속여 땅을 가로채는 범행을 구상하게 됐다.

임야와 전답으로 이뤄진 이 토지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A 씨(62)의 할아버지가 대한제국 관원으로 재직하던 1916년 8월 조선총독부에서 받은 것. A 씨 집안은 3대째 부지를 상속받아 농사를 짓고 관리하면서 세금까지 납부해 왔다. 하지만 A 씨 가문이 이 토지를 서류상 소유자로 등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틈을 파고들기로 한 것이다.

김 씨는 성과 본관이 A 씨와 같고 과거 종중회장을 지낸 B 씨(69)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이들은 해당 부지가 B 씨 종중 소유였던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또 종중이 부동산을 처분한다는 내용의 결의서와 이를 김 씨에게 판다는 매매 계약서도 썼다. 모두 가짜였다.

김 씨는 이 서류를 증거로 법원에 B 씨 종중을 상대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냈다. 종중이 자신에게 부지를 팔았으니 소유권을 넘겨받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범행이 성공하면 김 씨에게 돈을 받기로 하고 형식상 피고가 된 B 씨는 소장을 받고도 계속 법원에 답을 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민사소송법상 피고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된다.

결국 김 씨는 2013년과 2014년 소송에서 이겼고 공시지가가 26억여 원에 이르는 토지를 고스란히 손에 넣었다. 이렇게 가로챈 토지는 헐값인 14억 원에 팔아넘겼다.

법원도 속아 넘어간 이 범행은 김 씨에게 땅을 산 사람들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증명을 이 땅의 관리인에게 보내면서 탄로 났다.

관리인에게 사연을 들은 A 씨의 고소로 6개월에 걸쳐 수사를 벌인 경찰은 김 씨가 허위 서류를 제출해 법원까지 속이며 토지 소유권을 취득했음을 확인하고 20일 김 씨를 붙잡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B 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으로 배분된 사정토지 중 보존등기가 안 된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은 반드시 보존등기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A 씨는 김 씨의 등기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김 씨로부터 땅을 사들인 사람들이 김 씨를 상대로 토지대금 14억 원을 돌려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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