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현실주의’ 역사관 한물갔다… 이젠 ‘트랜스내셔널’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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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가 보는 현대 세계/이리에 아키라 지음/이종국 옮김/260쪽·1만5000원·연암서가

국제사회는 과연 먹고 먹히는 야생의 ‘정글’인가. 20세기 들어 두 번의 세계대전에 이어 냉전까지 겪으면서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이른바 ‘현실주의’가 득세했다. 현실주의에서 국가 간 관계는 마치 자릿세를 놓고 패싸움을 벌이는 건달들처럼 철저한 힘의 세계로 그려졌다. 일본인으로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주의가 이제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한다.

재미있는 것은 외교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가 1980년대 이전 자신의 연구 성과는 글로벌 시대에 들어맞지 않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고 시인한 점이다. 그러면서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과 헨리 키신저의 ‘외교’와 같은 이 분야의 대표 저작 역시 후진적이라며 대놓고 비판했다. 강대국들의 권력정치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기술하는 것은 이제 편협한 시각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람과 상품이 국가를 넘어 글로벌하게 움직이는 요즘 시대는 새로운 역사관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국가가 아닌 지구를 틀로 삼는, 그리고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닌 국경을 초월하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연계에 주목한다”고 썼다. 국경을 초월한다는 의미인 트랜스내셔널 역사 연구는 강대국 위주가 아닌 세계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동시에 환경이나 에너지 이슈 같은 생태 연구까지 포괄하고 있다.

저자가 중시하는 글로벌화가 결국 미국의 패권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예컨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1970년대를 예로 들어 글로벌화와 미국의 신제국주의는 같지 않다고 반박한다. 이 시기 일본과 독일, 프랑스 등의 경제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1960년대까지 국제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한 절대 우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한국과 중국, 대만,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경제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국가 중심 사관을 비판하면서 일본의 우경화에 일침을 가한 것도 눈길을 끈다. 그는 “일본인이 국가 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현 세계를 배척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일본의 국익에도 역행한다”고 적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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