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박 대통령이 문 대표 집에 찾아간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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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2002년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돼 1년 반 동안 실형을 살고 나온 구여권 중진 A 씨의 얘기다. 2005년 어느 여름날 다른 중진 의원으로부터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 장소인 북악산 정자 입구로 올라가는데 경호 인력이 수백 명 깔려 있었다. 잠시 후 노무현 대통령이 나타나더니 손으로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A 선배, 제가 그동안 목에 가시가 걸린 듯했습니다.” 그날 세 사람은 코가 비뚤어질 만큼 대취했다. A 씨는 조금 서운할 수도 있었던 노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 했다.

연금개혁 변질에 비분강개

현직 대통령의 인간적 체취가 담긴 호소는 군대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월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 가입을 독려하기 위해 셀카봉을 들고 윙크하며 스스로를 ‘디스’하는 코믹 영상을 찍은 것도 그런 ‘몸짓의 심리학’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 중요하다는 공무원연금 개혁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그리고 정치권과 어느 정도나 소통하고 있는 것일까? 여야는 지금 재정 절감 효과가 미흡하기 짝이 없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가장 잘된 개혁’이라 우기며, 국민 부담 증가를 초래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로 인상’까지 사회적 기구에서 논의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이뤄 가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여-야-청 협의 과정에서 연락관 역할을 맡았던 조윤선 정무수석을 교체한 것 말고는 과연 무엇을 했던가?

박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신임 원내대표를 관저로 초청해 축하 저녁을 내면서 제대로 된 공무원연금 개혁과 경제 활성화 법안 처리를 당부해 봤으면 한다. 여성 대통령이 간곡한 당부를 한다면 야당이 지금처럼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하지 못할 듯하다.

박 대통령이 조용한 밤에 보좌관 한 명 데리고 문재인 대표의 구기동 자택을 찾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문 대표님. 5·2 여야 합의대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면 6년 만에 다시 세금으로 연 3조 원의 적자 보전액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차기 정권에서 그 힘든 개혁을 또 해야 하는데 만일 문 대표님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국민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수 국민은 대통령 편에 설 것이다. 대통령의 불통 논란도 일거에 사라질 수 있다. 제대로 된 공무원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야당은 힘을 잃을 것이 틀림없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뒤에도 제1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직접 야당 당사를 찾아가 17시간 밤샘 토론까지 벌였다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일화는 그저 남의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는가.

4대 개혁의 촛불을 들어야


박 대통령은 19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방한에 맞춰 열린 한국-인도 최고경영자 포럼에서 ‘어둠을 탓하기보다 촛불을 켜라’는 인도 격언을 인용했다. “경기 회복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세계경제의 재도약을 주도하겠다는 각별한 의지와 도전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꺼져 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필두로 한 공공 개혁과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구조 개혁의 촛불을 들어야 할 때다. 박 대통령이 진심을 담은 언어로 국민과 야당 세력을 찾아가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고 싶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당초 목표마저 상실해 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스스로를 유폐해 온 기존 틀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최고의 공안검사를 국무총리로 내세운들 4대 구조 개혁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박근혜#소통#이종걸#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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