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긴장, 4强외교에까지 악영향… 대북 유연성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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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한국 외교/新 실용의 길]<中>남북관계부터 풀어야
“남북관계를 외교무기로”

지난달 28일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국관리소를 통해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처음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 지원 차량이 북한을 향하고 있다.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는 균형을 갖춘 대북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파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국익을 위해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21세기 춘추전국시대’. 한국 외교의 무기는 남북관계다. 주변국에 북한 문제 해결을 맡기고 의존할수록 한국 외교는 멀리 표류한다. 실용적 접근법으로 한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발전을 주도해야 동북아 외교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이런 힘을 얻으려면 경직된 원칙의 그림자가 짙은 대북정책의 체질을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4일. 원동연 북한 통일전선부(대남부서) 부부장은 금강산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남측이 대화를 제의하면 우리(북한)가 받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를 전해들은 통일부는 8월 18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직전인 13, 14일경 남북 고위급 접촉을 북한에 제안하자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회담 날짜를 8월 19일로 결정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19일로 하되 북한이 원하면 날짜를 조정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한다. 》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정부는 결국 11일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9일 개최하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17일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개성에서 만난 남측 인사들에게 “하필 군사훈련 기간에 고위급 접촉을 하자고 제안하느냐”고 말했다. 결국 2차 고위급 접촉은 무산됐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주장을 다 받아줄 일도 아니지만 굳이 북한이 꺼리는 군사훈련 기간에 대화하자는 것은 유연성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경직된 원칙의 과잉으로 실용주의가 사라지는 건 큰 문제”라고 말했다.

○ 대북 실리주의 부재가 외교 난맥으로

북핵 문제와 대북정책에서 북한을 설득할 실질적 해법을 만들 실용주의의 부재는 남북관계 주도력 상실은 물론이고 불안한 긴장관계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이는 일관성 있는 외교 전략 부재와 함께 한미 한중 한일 한-러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정체되자 한국의 ‘중국 북핵 해결 활용 전략’은 중국에 의존하는 모양새로 변했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5일 “한중이 밀착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품이다. 중국은 덕담은 해도 발 벗고 북한 문제 해결에 나서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에 의존하자 중국은 한국에 반대급부를 요구했다. 지난해 7월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역사 문제에서 대일 한중 공동대응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밀착된 듯한 한중관계는 미국의 우려만 증폭시켰다. 한미관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미국은 자신과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는 거리를 두고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중국과는 대일본 프런트 라인(최전선)에 선 한국을 보며 중국 활용이 아니라 아예 중국 쪽으로 가버리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과거사와 실리를 분리하지 못하는 사이 일본은 한국이 북한을 관리하지 못한 데서 파생된 외교 균열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북한에 대한 대응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의 명분으로 이용하는 것. 러시아를 활용하겠다는 남-북-러 협력은 남북 대화가 막히면서 별다른 진척이 없다.

○ 수동에서 선제적 대응 체질로 바꿔야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실용적 접근법으로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북정책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는 “북한의 제의나 도발에 반응하는 수동적 리액티브(reactive)에서 벗어나 상황을 선제적으로 주도하는 프로액티브(proactive)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3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들어선 뒤 대북 민간교류 대폭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남북 교류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의미 있는 시도이지만 교류 협력만으로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건 아니다. 교류 협력은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 행위 앞에선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가는 모래성과 같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과 교류 협력의 균형이 출발점”이라며 “두 문제를 병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남북이 눈높이를 맞춰 접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는 뜻을 전할 특사를 보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가 원로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북한에만 먼저 신뢰를 보이라는 식은 안 된다”며 “박 대통령이 김정은 제1비서에게 △흡수통일 의사가 없다 △통일은 남북 모두에 대박이다 △먼저 신뢰할 테니 북한도 신뢰를 보여 달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통일 외교 안보의 컨트롤타워인 대통령국가안보실이 군인과 외교관들에게 장악돼 대북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 안보와 대화를 균형 있게 조율하도록 구성을 바꿔야 한다는 것.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의 과정을 중시하는 원칙을 충분히 보여줬으니 이젠 실질적인 평화라는 성과를 내기 위한 유연한 접근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조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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