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안심귀가… 학원생 안심귀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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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年 40여억 사업 ‘탁상행정’
경광봉만 든 40, 50대 여성 대원들 ‘우범지대 범죄예방’ 애초부터 무리
여성들 이용 적자 학원가로 몰려

서울 서초구의 한 골목길에서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스카우트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한 학생을 데려다주고 있다. 윤숙녀 씨 제공
서울 서초구의 한 골목길에서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스카우트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한 학생을 데려다주고 있다. 윤숙녀 씨 제공
늦은 밤 여성이 안심하고 귀가하도록 돕는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스카우트’ A 씨는 매일 오후 10시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로 향한다. 학원이 끝나고 나오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기 위해서다. 학생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에게 서비스를 홍보하기도 한다. A 씨의 ‘학원 안심귀가서비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후 11시 무렵이면 인근 독서실로 가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독서실에 서비스 홍보지를 비치하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A 씨는 “이 동네 서비스 이용객의 70%가 귀갓길 학생”이라며 “엄마 마음에 아무래도 눈에 많이 띄고 걱정스러운 게 아이들”이라고 털어놨다.

대치동뿐만 아니다. 또 다른 유명 학원 밀집 지역인 서울 양천구 목동도 비슷하다. 본보 취재 결과 대치동, 목동뿐만 아니라 서울 성동구, 노원구 등 다른 지역에서도 성인 여성보다는 귀갓길 학생이 ‘여성안심귀가서비스’의 주 이용객이다.

서울시가 2013년 도입한 여성안심귀가서비스가 ‘학원안심귀가서비스’로 자리 잡은 원인은 저조한 이용객의 수. 서울시의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에서 3분기까지 스카우트 한 명이 서비스를 제공한 횟수는 이틀에 한 번 정도에 그쳤다. 스카우트 대부분이 40, 50대 여성이다 보니 정작 우범지대에서는 활동을 못 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지역 스카우트인 최모 씨(56·여)는 “지구대에서도 ‘위험한 지역은 가지 말라’고 한다”고 털어놨다. 스카우트가 가지고 다니는 방범용 도구도 플라스틱으로 된 경광봉이 전부다.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경찰은 “현실적으로 스카우트들이 노란 옷을 입고 경광봉을 든다고 해서 범죄를 예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서울시는 스카우트와 지구대, 파출소 간 합동 순찰을 통해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선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시행되고 있지만 예산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여성안심귀가서비스 예산은 40억 원이었지만 올해는 43억200만 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르다 보니 스카우트의 수가 지난해 500명에서 올해는 420명으로 줄어드는 일도 벌어졌다. 이은재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귀갓길 청소년을 데려다주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현재 스카우트의 대부분인 40, 50대 여성으로는 치안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니 경찰이 스카우트와 함께 움직이는 등의 방안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수요 예측을 하지 않고 정책을 만들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진단하며 “이용객만 주먹구구식으로 늘리지 말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라 likeit@donga.com·황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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