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車 ‘피아트의 악몽’ 벗어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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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몰린 국내 자동차산업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했다. 엔·유로화의 약세로 해외에서 치이고 안방에서는 수입차에 밀리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수입차 증가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국산차의 경쟁력 강화,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국내 내수업체의 판매가 부진하면 고용이 줄고 연관 부품산업도 위기에 빠지기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훨씬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뒷걸음질친 국내 완성차 업계

지난해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매대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수입차의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도 1996년 0.6%에서 올 1분기(1∼3월)에 14.6%로 커졌다. 반면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에 77.6%에서 66.8%로 추락했다. 한때 최대 26%(1998년)에 이르던 한국GM의 시장점유율도 올 1분기 8.5%까지 떨어졌다. 수입차 업계는 지난해 전년 대비 25.5% 증가한 19만6359대를 팔아치웠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수입차 판매대수가 20만 대를 넘어서면 부품 가격 인하나 정비센터의 투자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향후 수입차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입차의 시장점유율 급증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수입차의 판매가 늘면서 최근 5년간 매장과 AS센터는 각각 58%와 69%가 늘어 투자는 물론이고 고용도 늘었다. 지난해 단일 브랜드 기준으로 가장 많은 차량을 판매한 BMW코리아는 2007∼2014년 2조2326억 원의 세금을 납부하면서 지난해 770억 원을 투자해 인천 영종도에 드라이빙센터를 지었다.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방문객만 연간 8만5000여 명에 달해 한국에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육성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500여 종에 이르는 수입차 덕분에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을 뿐 아니라 국내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으로 가격 상승을 억제하고 서비스도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 수입차 효과, 고용에는 한계

하지만 수입차의 효과를 미국 중국 유럽 등과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은 수입차 천국이지만 모두 현지 생산된 물량으로 고용과 투자에서 국산차와 다를 게 없지만 한국의 수입차는 해외에서 생산해 수입된 것으로 수입차 시장 확대의 효과를 주요국과 같은 잣대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국내 완성차와 수입차가 똑같은 대수의 차를 판매했을 때 필요한 영업망과 AS센터는 엇비슷하지만 고용 효과에서는 제조를 하는 국내 완성차 업계가 단연 앞설 수밖에 없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고용창출 효과를 분석했지만 같은 판매량 기준으로는 고용이 국내 완성차의 10%도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포기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내수시장 점유율 하락은 현대·기아차에 위기일 수밖에 없다. 한때 80%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을 토대로 해외에 진출해 글로벌 ‘빅5’의 수준까지 올랐지만 지난해 내수시장 점유율이 60%대로 떨어지면서 국내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뤄 수출에 나서는 전략에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연간 450만 대 수준의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40%에 그치지만 물량 기준으로 약 180만 대에 이른다. 신차 개발에 따른 비용이 현대·기아차에 절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김현철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도요타나 닛산이 단일 차종 기준 10만 대만 생산해도 이익이 나는 구조로 원가를 줄인 데 비해 현대·기아차는 높은 인건비와 저효율의 생산구조로 최소 20만 대 이상을 팔아야 이익이 나는 상황에서 내수가 줄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피아트의 실패에서 배워라

현대·기아차가 예상보다 빠르게 내수 시장점유율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면서 이탈리아의 자동차 업체인 피아트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87년에 국영기업이던 알파 로메오를 인수하면서 이탈리아의 유일한 자동차 생산업체가 된 피아트는 한때 내수시장의 60%를 점유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다양한 차종으로 무장한 수입차의 공세로 2000년 초반에는 내수시장 30%대가 무너지면서 위기에 처했다. 당시 피아트는 내수에서의 입지가 좁아지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해외에 생산기지를 짓고 적극 진출했다. 하지만 세계화전략은 1990년대 말에 불어닥친 중남미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미국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실패했다.

자동차 강국인 일본에서도 1990년대 말에 수입차가 내수시장의 10%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일본차 업계의 품질과 서비스 강화로 수입차의 판매 비중이 줄면서 현재는 6%대 수준에 그치고 있다. 김현철 교수는 “한국에서의 수입차 급증이 일본처럼 일시적인 현상이 되려면 국내 업체의 서비스나 품질이 획기적으로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김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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