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성완종 특별사면의 미스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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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2007년 12월 28일 저녁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만찬을 함께했다. 이 당선자가 “5년이 어떻게 지나갔느냐”고 묻자 노 대통령은 “5년이 좀 길게 느껴졌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이 주로 얘기를 했던 이날 만찬에 세간의 관심이 다시 쏠렸다. 성완종 경남그룹 회장의 특별사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만찬 직전 성 회장을 제외한 74명 사면안을 1차 재가했다. 다음 날 성 회장을 사면 명단에 포함시키라는 청와대의 지시가 다시 법무부에 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31일 새벽 노 대통령이 성 회장의 ‘나 홀로 사면’을 재가했고 그날 국무회의를 거쳐 말썽 많은 특별사면이 2008년 1월 1일자로 단행됐다.

노 대통령, 누가 움직였나

당시 만찬에 배석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사면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MB 캠프 대변인으로 동석한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도 “친하지 않은 두 사람이 그런 얘기를 나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만찬 이후 다음 날 오전 사이에 노 대통령을 움직일 만한 누군가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의혹의 핵심은 2007년 대선 일주일 전인 12월 12일쯤 청와대에서 사면 명단을 내려보냈지만 법무부가 성 회장의 사면에 강하게 반대해 빠졌다가 다시 추가된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으로 압축된다. 당시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표, 민정수석비서관은 전해철 새정치연합 의원이 맡다 12월 21일 이호철 수석으로 교체됐다.

노무현 측은 사면 발표가 나기 전 성 회장을 인수위 자문위원에 내정한 것을 MB 인수위 압력의 주요 근거로 들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성 회장 소유의 대아건설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대선자금 3억 원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는 성 회장을 소환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소액이라는 이유로 처벌 없이 넘어갔다. 성 회장은 노무현 정권 때인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사면 대상에서 빠진 사실을 알고 성 회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친노 인사들에게 백방으로 로비를 한 결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한화갑 전 의원은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못한 자신의 복권을 강금원(전 창신섬유 회장)이 성사시켰다”고 했다. 2012년 타계한 강 전 회장은 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 친노 인사들의 ‘영원한 후원자’였다. 성 회장 사면도 ‘한화갑 복권’과 비슷한 케이스일 수 있다.

문재인 대표, 발목 잡을 것

노 전 대통령이 성 회장을 끼워 넣으라고 했다면 민정라인에서 누구의 요청인지 물어보긴 힘들었을 것이다. 대통령기록물이나 법무부 사면 자료에도 전말을 담은 기록이 남아 있을 리 없다. 로비의 시작과 끝인 성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성 회장 특사 의혹은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당시 정성진 법무부 장관은 2008년 1월 11일자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임 중 사면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철학자 칸트의 말을 인용해 “사면을 잘 쓰면 굉장히 빛나지만 잘 못 쓰면 큰 불법이 된다”고 했다. 이제 와서 보니 참 의미심장하다. 특사 의혹은 두고두고 물귀신처럼 문 대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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