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 더이상 안된다” 세월호 두 실종자 가족의 호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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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조은화-허다윤 양 부모
“폭도 매도되는 빌미 줘선 안돼… 인양 빨리 될수있게 함께 할 것”
가족協 “협의된 것 아니다” 선그어… 유족들 “진실규명때까지 싸울 것”
25일 광화문서 범국민추모제 예정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유가족을 포함한 피해자 가족들이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으며 아들 같은 의경들과 악에 받쳐 싸우게 하는 걸 멈춰 주십시오. 국민들에게 자식 잃고 생기를 잃어가는 부모들을 폭도로 매도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하지 마십시오.”

단원고 실종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46)는 결국 대성통곡했다. 옆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아버지 조남성 씨(53)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세월호 피해자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더이상 폭력은 안 된다”고 한 호소였다. 사랑하는 딸을 품에 안지 못한 단원고 실종자의 부모들이다.

23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시 한사랑병원. 이 씨가 입원 중인 병실에서 조 양의 부모와 또 다른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 양의 부모 등 4명은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선체 인양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인양작업에 함께 하겠다”는 말도 했다. 이어 조 씨는 “과격한 투쟁의 현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경찰과 싸우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유가족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를 향한 호소였다.

4·16가족협의회는 이날 두 가족의 기자회견 진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던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오후 2시 반경 병원에 모습을 나타내 “가족협의회와 회견 내용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다. 유 위원장은 “인양 작업을 앞두고 계속된 시위로 정부 심기를 건드리면 인양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한 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회견 후 “1, 2년 지나야 찾을 수 있는 우리 딸을, 시민들이 돌아서고 (가족들이) 폭도라고 욕먹으면 찾을 수나 있겠느냐”며 여론을 걱정했다.

유 위원장이 전체 유가족 의견이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유가족마다 집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차이가 있다. 18일 열린 세월호 1주년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한 유가족은 “우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광화문 대신에 가족끼리 안산이나 팽목항에서 진상 규명을 주장했다면 국민의 지지를 더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은 여전히 ‘강경 투쟁’을 외치고 있다. 본보 취재진과 만난 단원고 유가족 대부분은 “민주노총이든 시민단체든 설령 우리를 이용한다고 해도 상관없다”며 “아이들이 제때 구조되지 못한 이유와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마음을 같이한다면 새누리당이 와도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유가족이 강경 투쟁에 매달리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트라우마 영향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사람들은 지겹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못 본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그리움이 커진다”고 토로했다. 가족들 사이에는 “이 싸움이라도 하지 않으면 슬픔을 못 견딜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또 다른 유가족은 “투쟁이라도 해야 정부가 유가족의 말에 귀 기울인다”고 항변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연합해 만든 ‘4·16연대’는 이번 주말에도 대규모 집회를 연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청량리역, 홍익대 정문 앞, 용산역 광장, CGV성신여대입구 앞 등 4곳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썩은 정권 시행령 폐기, 진실을 향한 국민 행진’을 진행한다. 광장 도착 후 분향을 하고 ‘범국민 추모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경찰은 추모제가 ‘불법 시위’로 변질되면 이를 제지할 방침이지만 시위대는 “문화제는 집회 신고 대상이 아니다”라며 반발하고 있어 또다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안산=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이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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