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부고기사 전문작가가 묻는다 “죽기 전 당신은 당신 삶을 살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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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 지음/배명자 옮김/312쪽·1만4000원·책세상

자신을 위한 2, 3장짜리 추모기사를 미리 한 번 써보라며 ‘왜 사는가?’ ‘나는 행복한가?’ 같은 열 가지의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의 제목도 주제도 뻔하고 지겹다. 비슷비슷한 인생지침서가 범람하는 출판시장의 바다에 빠진 이 책을 구원하는 건 바로 저자의 긴 이름만큼이나 요란한 수다다. 그의 직업은 부고기사 전문작가다.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추모기사만 10년 넘게 썼다. 독일 베를린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에 240편의 추모기사를 실은 그는 240명의 삶과 죽음을 유족을 통해 맞닥뜨린 셈이다. 저자는 철학을 전공했고, 본문을 읽어보면 록과 힙합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이 책을 지겨운 인생지침서로 치부할 수 없게 된다. 록, 힙합을 좋아하며 남의 죽음에 대한 기사만 죽자고 쓰는 철학자의 별난 독백을 코미디 프로 보듯 엿보면 그만이다. 책의 미덕은 그의 수다스러움에, 변덕스러운 단문의 연쇄에, 지독한 냉소에 있으니까. 그는 당신에게 조언을 잔뜩 해주고 돈을 받으려는 철학자의 궤변에 신경 끄라고 말한다. 차라리 오스트리아 밴드 오퍼스의 ‘라이브 이즈 라이프’, 영국 밴드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의 ‘라이프 이즈 포 리빙’ 같은 노래가 삶의 진실에 더 다가간다며 스스로 궤변 하고 수다 떤다.

저자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목차와 다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자동기술에 가까운 수다의 삼림으로 독자를 안내하다 마지막 나뭇가지를 젖히고 문득 뜻밖의 새 질문을 던지며 각 장을 마무리한다. 간간이 파란 글씨로 자신이 쓴 추모기사 일부를 삽입했다. 그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이거다. ‘죽기 전 당신은 당신 삶을 살았는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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