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화공학부, 교수 열정 + 장학금 지급률 75% + 大人교육…어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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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최진석 교사(왼쪽. 전주호남제일고)가 윤영상 전북대 화공학부 교수와 백종유 전북대 입학사정관을 상대로 취재하고 있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최진석 교사(왼쪽. 전주호남제일고)가 윤영상 전북대 화공학부 교수와 백종유 전북대 입학사정관을 상대로 취재하고 있다.
전북대 화공학부의 대인(大人) 교육의 실체는?

세상은 기술을 낳고, 기술은 세상을 바꾼다. 천년 단위, 백년 단위로 나누던 인류의 삶은 이제 연 단위, 월 단위, 일 단위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나올 신기술 또한 세상을 바꿀 것이다.

공학 교육은 주로 실험실에서 하지만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 그 성과가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 교육은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고, 시대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기본에 관한 것이다.

전북대 화공학부는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한다. 화공은 배우는 범위가 넓기에 기본에 충실하다는 말이 생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질의 성분부터 공장설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화학공학임을 감안한다면 왜 기초가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화학공학부 교수들은 웬만한 잔바람에는 끄떡하지 않는다. 유행을 좇지 않는 대신 왜 유행이 왔는가를 살핀다. 시대에 민감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부가 1년에 한번 ‘산학협력위원회’를 개최해 산업 현장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2013년 12월 열린 위원회에서는 응용미생물학의 내용을 보완해 바이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기도 했다.

화공학부의 대인 기질은 ‘화공학부’란 이름을 고수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교수들의 확고한 교육철학에 따라 특정한 분야에 능통하기보다는 융복합이 가능한 인재를 기를 수만 있다면 학부 이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학부 이름도 ‘My way’를 가겠다는 것이다.
전북대 화공학부는 학부이름에 생명, 나노, 디스플레이 등 유행을 반영하는 이름을 넣는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민지호 교수는 “몇 년 전에 디스플레이가 유행했다. 어떤 화공학부는 디스플레이화공, 혹은 화공디스플레이로 개명을 했지만 우리 교수들 사이에선 산업 유행이 바뀔 때마다 개명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산업에도 적응할 수 있는 기초가 탄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행은 한때이지만 수학, 화학, 물리 등 화공의 토대가 되는 기초과목을 튼튼히 배워둔다면 어떤 유행이 와도 생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관호 씨(3학년)는 “기초를 다진 후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내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다”며 “다른 학과는 진출 분야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화공학부는 갈 길이 더 많이 열려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01학번 윤지희 씨(포닥과정)가 실험실에서 계란에서 항균물질인 리소좀을 추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전북대 제공
01학번 윤지희 씨(포닥과정)가 실험실에서 계란에서 항균물질인 리소좀을 추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전북대 제공


전북대 화공학부처럼 화공학부란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세계 유명대학 화공학부 중 미국의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포스텍만이 그대로다. 칼텍의 커리큘럼은 화공 70%와 관련 학문 30%로 짜여있고 5개의 세부 트랙이 있다. 전북대 화공학부도 에너지화학공학, 나노화학공학, 생명화학공학 등 3개의 트랙으로 구성돼 있으며 화공 비중이 칼텍과 비슷하다. 트랙을 구분했다고 해서 학생과 교수들이 그 트랙만 가르치고 배우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17명의 교수들이 3개 트랙을 맡고 있는데 트랙별로 교수가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다. 트랙에 관련된 과목을 자기 전공에 따라 가르치고 다른 트랙에서도 강의를 한다. 학생 역시 특정 트랙에 매몰돼 그 트랙만 공부하지 않고 전공필수 과목 이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정 분야에 대한 몰입교육을 해 유행이 지나갔을 때 졸업생들이 갈 데가 없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화공학부 커리큘럼은 1학년에서는 수학, 화학, 물리. 생물 등 자연과학의 기초를 배우고 2학년부터는 세부 전공에 필요한 기초인 물리화학, 유기화학, 화공양론 등을 이수한다. 3학년과 4학년 과정은 전공심화와 종합설계 과목을 통해 지금까지 배운 것을 현장과 연결시키는 훈련을 하도록 되어 있다. 4학년 필수과목인 종합설계는 팀 단위 프로젝트로, 일종의 졸업논문 성격이다. 이 과목에서는 그간 습득한 이론을 바탕으로 실행 능력을 키운다.
2013년 종합설계에서 대상을 받고 석유회사인 동성하이켐에서 근무 중인 09학번 하은지 씨는 “폐수를 정화하면서 전력생산이 가능한 기술을 미생물과 ESS(에너지저장장치)를 결합해 설계했다. 미생물 연구는 에너지화공 쪽에서 많이 하는데 나는 생명화학공학이 세부전공이었다. 종합설계 때 고민하고 실험을 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회사에 들어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위축되지 않고 생소한 분야에 도전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윤영상 교수는 “기초와 현장 적응 커리큘럼을 강조하는 것은 현장 전체를 이해하는 엔지니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화학공학을 전공한 대기업 CEO가 많은데 이는 기초부터 공정까지를 배워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을 중시하는 화공학부의 의지는 1년 4학기제에 있다. 1년 4학기제란 기존의 2학기에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도 특별학기로 포함시켜 수업을 하는 것으로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대상이다. 4학기제 도입 배경은 수준 차가 나는 학생들을 평준화시켜 심화교육의 디딤돌을 놓기 위한 것. 학부는 그동안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4학기제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확인했다. 4학기제는 특성화(CK-1)프로그램과 결합돼 태양광, 바이오 등을 융합전공으로 이수하는데도 활용한다.
백지효 씨(3학년)는 1년 4학기제의 대표적인 수혜자다. 백 씨는 화공학부에 필수인 화학에 대한 기초가 부족했다. 하지만 4학기제를 이용, 기초화학부터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학부에서 화학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 됐다. 기초화학은 고등학교 화학Ⅱ 수준으로 대학에서 고등학교 화학을 가르치기 위해 별도의 커리큘럼을 마련하는 일은 다른 대학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2014년 5월 전북 부안의 부안신재생에너지소재개발센터 방문한 ‘신재생에너지개론’ 2학년 수강생들이 이범수 사무국장으로부터 헬리캠을 이용해 파악한 단지 내 태양광설치현황을 듣고 있다.   전북대 제공
2014년 5월 전북 부안의 부안신재생에너지소재개발센터 방문한 ‘신재생에너지개론’ 2학년 수강생들이 이범수 사무국장으로부터 헬리캠을 이용해 파악한 단지 내 태양광설치현황을 듣고 있다. 전북대 제공


기본을 지키는 정신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충실히 지킨다’는 원칙으로 나타난다. 학부는 작년 세월호 사건 여파로 외부견학 등 계획된 커리큘럼이 차질을 빚자 방학을 늦춰가며 크리스마스 때까지 밀린 수업을 하고 시험까지 치러 기어코 교육과정을 끝냈다. 취업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시대이지만 이 학과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정봉우 교수는 재작년 3학년 모 학생이 좋은 기업에 취업했다며 4학년 수업을 빼달라는 요구에 “취업보다 교육이 우선이고 너는 더 좋은 데 취업할 수 있다”며 거절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정 교수는 “대기업에 들어 가 임원까지 될 수 있는 재목이라고 봤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올해 국내를 대표하는 회사에 합격했다”며 “원칙을 고수하는 게 학생들에게도 좋다”고 말했다.

이 학부 교수들의 공부욕심과 연구열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다. 임연호 교수는 피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하는 나노바이오 센서와 반도체를 제작할 때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3D SPEED’라는 반도체 소프트웨어를 상용화했다. 윤영상 교수는 대폭 강화된 교수 승진 조건을 5배나 초과한 연구실적으로 전북대 최초의 조기승진 1호를 기록했다. 교수들의 열정 덕에 화공학부는 CK-1(지방대학특성화사업), 누리사업, 에이스사업, 링크사업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7년 연속 BK21+사업에 선정됐다. 20여 년 전부터 학부교수들은 학기에 한 번 전체 교수들이 모여 워크숍을 여는데 이 자리에서 학생 개개인의 신상부터 학부의 미래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한번 결정한 것은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김성종 교수(학부장)는 “화공학부는 공부도 열심히 하지만 놀기도 잘 한다. 끈끈함이 전통이다”라고 말한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공학제전 참석률은 공대 최고이며 교수 재학생 동문이 한데 어울리는 뒤풀이에서는 반드시 ‘화공 최고’를 외친다. 작년 여수 산단 현장견학 때는 지역에 근무하는 화공학부 동문들이 전부 모여 선후배 간의 정을 돈독히 하기도 했다. 화공학부의 끈끈함은 취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07학번으로 삼성전자에 근무 중인 이소영 씨는 “취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각종 정보를 주면서 이끌어 주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그는 취업에 성공한 선배와 재학생들 간의 멘토-멘티 제도, 과 동아리 모임에 졸업생 선배가 참여하는 것 등을 그 예로 들었다.

전북대 화공학부는 2014년 공과대학 모든 학과가 참여하는 공학제전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 제전에는 교수, 학생, 동문이 참여했는데 화공학부의 끈끈함과 응집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학부의 전통을 자리잡았다. 전북대 제공
전북대 화공학부는 2014년 공과대학 모든 학과가 참여하는 공학제전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 제전에는 교수, 학생, 동문이 참여했는데 화공학부의 끈끈함과 응집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학부의 전통을 자리잡았다. 전북대 제공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시대흐름까지 반영한 교육을 혹독하게 받은 학생들의 2012~2014년 평균 취업률은 63%로 삼성전자, OCI,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굴지의 회사에 많이 입사했다. 시장에서는 화공학부 졸업생들에 대해 “조직 충성도가 높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한다. 3월 25일 OCI 이우현 사장은 특강에서 “교수님들이 가르쳐주는 걸 열심히 배우면 성공할 것이다. 여러분은 최고급 수준의 학문을 배우고 있다”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학과의 2014년 장학금 지급률은 75%에 평균액수는 118만 원. 2016학년도 학부의 입학정원은 95명으로 수시에서 47명, 정시에서 48명을 뽑는다. 여느 지방대학처럼 수시 비중이 70%를 넘지 않는 것은 학과에 들어와 적응하려면 열정보다는 기초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 작년 수시 합격자의 성적은 2.5등급이었고 정시는 3등급이었다. 2016학년도 수시모집의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교과의 비중을 전년도에 비해 줄인다. 1단계에서는 자기소개서 70%, 학과성적 30%를 반영한다. 2단계 면접에서는 30%인 학과성적 중 2분의 1만 반영해 내신성적 반영비율을 15%로 줄였다.

※이 취재에는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최진석 교사(전주호남제일고)가 함께했습니다.

전주=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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