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선봉에 선 日 군수업체… 한국인 6만여명 ‘지옥 노동’ 내몰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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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징용현장 ‘근대화 세계유산’ 될판]
세계유산 신청 ‘강제징용 현장’ 11곳
원폭 시신수습 동원 2차 피해도… 미쓰비시-신일철 대기업으로 성장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한 28개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은 일본 서쪽 규슈(九州)와 야마구치(山口) 지역 8개 현에 퍼져 있다. 이 일대에서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기 때문에 일본에선 ‘근대화의 성지’로 꼽힌다. 이 중 규슈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현 일대에 근대 산업을 이끈 제철 탄광 등 산업 시설들이 집중됐고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군수물자를 만드는 전초기지가 되면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기에 이른다.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 따르면 일본이 이번에 유산 등재 신청을 한 28곳 중 징용된 조선인들이 일한 곳은 11곳이며 징용된 인원은 총 1481명이다. 하지만 일본 현지 시민단체 등이 조사한 인원은 최대 6만3700여 명에 이른다. 위원회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후쿠오카(福岡) 현 기타큐슈(北九州) 시내 신일철주금이 운영한 야하타(八幡) 제철소 내 사무소, 수선공장, 단조(鍛造·금속을 두드리거나 눌러 만드는 것)공장 등 3곳에만 최소 708명이 강제 동원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해 7월 과거 모습이 보존된 이곳 시설들을 직접 시찰했다.

후쿠오카 현 오무타(大牟田) 시에서 미쓰이(三井)광산이 운영한 미이케(三池) 탄광 관련 시설 3곳에도 한국인 466명이 징용됐으며 나가사키(長崎) 현 나가사키 시 하시마(端島) 탄광과 다카시마(高島) 탄광에도 158명이 징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일본 현지 시민단체들은 “이들 탄광은 질 좋은 석탄이 나와 최대 4만여 명이 강제로 동원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번에 섬 자체가 문화유산으로 신청된 하시마 섬의 경우 나가사키 항에서 18km 떨어진 무인도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군함을 닮아 ‘군함도’로 불린다. 야구장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의 작은 섬이지만 70여 년 전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해저 700m 탄광에서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시달려 ‘지옥섬’ ‘감옥섬’으로 불렸던 곳이다.

피해자들은 매일 2교대로 12시간씩 좁고 어두운 막장에서 바닥에 엎드리거나 옆으로 누운 채 탄을 캤으며 낙반 사고로 한 달에 4, 5명씩 죽어 나갔다. 탈출을 시도했던 사람들은 바다에서 목숨을 잃거나 도중에 잡혀 맞아 죽었다. 당시 이 섬에서 탄광을 운영하면서 인력 수탈에 앞장섰던 회사가 바로 미쓰비시(三菱)광업(현 미쓰비시머티리얼)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미쓰비시광업, 신일철주금, 미쓰이광산 등 군수 기업들은 현재 모두 일본 굴지의 기업이 됐다. 1945년 패전 직후 미군에 의해 붕괴될 뻔한 일본의 군수 기업들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의 후방 지원’이란 명목 아래 부활했다.

정혜경 위원회 조사1과장은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하시마 탄광, 미이케 탄광 등에서는 연합군과 중국군 포로들도 동원돼 가혹하게 혹사당했다”며 “노동력 착취의 현장을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태평양전쟁#지옥 노동#강제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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