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의 恨 서린 日 11곳, 세계유산 될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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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조선인 징용내용 빼고 등재 신청… 유네스코 자문기구 “적합” 판정
7월 총회 투표서 통과될 가능성 커… 韓, 손놓고 있다 日 외교전에 당해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와 다카시마(高島)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등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의 한이 서린 일본 내 지역과 시설물 11곳이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프랑스 파리의 외교 소식통은 “약 2주 전에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전문가 사전 심사에서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 28곳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건에 기술적으로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며 “전문가 심사의 최종 결론은 난 상태이며 5월 중 공식 출판될 자료집 인쇄 작업에 이미 돌입했다”고 밝혔다.

최종 결론은 6월 28일∼7월 8일 세계유산위원회 총회(독일 본)에서 21개 위원국의 합의 또는 투표로 결정되지만 그동안 ICOMOS 심의를 통과한 대상은 대부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관행에 비춰 볼 때 이번에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일본이 신청한 대상은 후쿠오카 현, 나가사키 현 등 총 8개 현에 걸친 28개 시설 및 유적으로 막부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년)에 걸쳐 급속한 중공업 발전을 이끈 현장이나 시설물이다. 하지만 이 중 40%에 달하는 11곳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용자들의 피와 한이 서린 고난의 현장이다.

지난해 9월 한국을 방문했던 기쇼 라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소장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등재 신청서를 살펴봤는데 일본 측 주장대로 메이지 유신 관련 시설들이었고 강제 징용 관련 내용은 없었다”고 말해 일본이 이번 신청을 하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올려 또 다른 과거사 왜곡을 시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폴란드 내 아우슈비츠 수용소 터가 참혹했던 역사를 전면에 내세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과 대비된다.

이번에 등재될 가능성이 높은 11곳 중 나가사키 현 하시마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최대 800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탄광에 강제 징용되어 굶주림과 가혹한 노동, 학대에 시달려 ‘지옥섬’이라고 불리던 곳이며 나가사키 조선소(미쓰비시중공업)에도 최대 4700명이 동원돼 태평양전쟁 시기 전투함과 어뢰 등을 생산하는 전초기지로 활용된 곳이다.

이번 문화유산 등재 추진 과정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해 일본 정부가 2013년 9월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유네스코 본부 관계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비해 유네스코 한국대표부는 그동안 거의 손을 놓고 있다가 최근 분위기가 일본 쪽으로 급선회하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현재 유네스코 한국대표부는 대사와 공사 등 문화외교 전쟁을 책임질 ‘투톱’이 공석인 상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네스코#징용#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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