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진핑 ‘아시아 운명공동체’ 선언, 朴대통령 책략은 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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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어제 폐막한 보아오 포럼에서 “아시아가 운명공동체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고 선언했다. 중국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아시아 운명공동체 조성의 중요한 수단으로 제시됐다. AIIB 출범을 놓고 미국과 벌인 대결이 중국의 완승으로 끝난 시기와 겹쳐 ‘유라시아 패권의 종주국’ 선언 같은 위세가 느껴진다.

시 주석은 ‘아시아 운명공동체’가 중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주변국과의 상생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시아의 안전은 아시아인이 지켜야 하고, 제3국을 대상으로 한 군사동맹은 공동의 안전 보장에 마이너스라는 ‘아시아 신(新)안전 개념’은 아시아 회귀 전략을 펴온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으로선 가볍게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시 주석은 아시아에서 지배력을 회복하려는 일본을 비판하며 ‘가치관’까지 세계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에서 벗어나 대국답게 아시아태평양을 미국과 나눠 갖겠다는 ‘21세기 신형 대국관계’의 패권전략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것이다.

비전과 실천방안을 겸비한 중국의 세계전략을 한국은 제대로 읽고 있는지 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아직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시 주석의 방한 때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구상(일대일로)’ 간에 연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어떤 진척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팽창은 기회이면서 국제질서를 흔드는 위협이기도 하다. 중국이 경제뿐 아니라 외교 안보 분야에서도 질서와 규칙의 제정자로 나서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다.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국익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중(韓中)의 견제를 자초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신(新)밀월시대를 강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한중관계, 한미관계가 좋다고 말로만 떠들 일이 아니다. 한국 외교가 강대국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있는지 보여줄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거대한 격랑을 헤쳐가려면 현안 대응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외교 전략을 담은 독트린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아시아#운명공동체#보아오 포럼#AIIB#가치관#도광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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