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문재인은 이 나라가 부끄러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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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전시작전통제권,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문제 등은 진정한 주권국가라고 자부하기에도 부끄럽게 만든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1일 서울 효창공원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 추모식에서 한 말이다. 문 대표는 왜 부끄러운지에 대해선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속뜻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 대표는 먼저 “진정한 광복은 아직도 까마득하기만 하다”고 했다. 새정치연합 일부 의원은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보유한 사드 미사일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셀프 조공(전병헌 최고위원) 아니냐”며 백안시한다. 문 대표가 사드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길 희망하고 있는 사드를 수용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주권국가답지 못하다는 뜻일 게다.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해서도 문 대표는 지난해 10월 “주권국가로서 60년 넘게 전시군사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문 대표가 전작권 전환 연기나 사드 배치론을 비판하려면 현재로선 마땅한 방어 수단이 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비롯해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단지 “중국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권국가로서의 자기방어 수단을 배척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에 기울어진 부끄러운 신종 사대주의가 아니겠는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 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군 유럽사령관이 회원국이 제공하는 모든 부대를 작전통제 하도록 돼 있지만 회원국 사이에서 작전통제가 주권 침해라거나 이를 전환 또는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기되지 않는다. 호주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 2011년 북부 다윈에 미 해병을 상시 주둔시키고 미국의 전투기와 핵무기 탑재 함정이 호주 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주권국가로서 부끄럽다고 힐난하는 야당 지도자는 없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문 대표가) 말은 김무성처럼 하지만 행동은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처럼 한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가 1980년대 운동권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듯한 당 안팎의 ‘반미 자주파’들에게서 벗어나 현실적인 안보 노선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이런 색깔 공세는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

문 대표는 천안함 폭침 5주년을 하루 앞둔 그제 야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의한 폭침’을 명시적으로 적시했다.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해병대 장갑차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가까이는 4·29 재·보궐선거, 멀리는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중도·보수로의 지지세 확장을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국민이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고 그 배역을 충실히 소화하는 정치 지도자는 실제 정책에서도 국민의 생각에 맞춰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소통자’로 불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를 보여 주지 않았던가.

대선 후보 시절 ‘반미면 어때’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진보 세력의 반대가 극심했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임기 말인 2007년 확정하며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고 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항공모함 입항을 위한 전진기지에 불과하며 중국을 자극해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던 반대 세력을 물리친 것은 미국 중국 등을 방문해 국익을 둘러싼 치열한 수 싸움을 겪어 봤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의 적자(嫡子)라는 문 대표의 안보 행보는 5년이나 지연된 것이긴 하지만 새정치연합의 불안한 안보관을 바꿔 놓을 수 있다면 야당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고 본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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