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가세로 中 독주 막았지만… ‘한국의 가치’도 낮아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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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AIIB 참여’ 中에 통보]

3월 19일자 A1면.
3월 19일자 A1면.
한국이 18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26일 같은 내용을 중국에 최종 통보함에 따라 한국은 7300억 달러(약 806조 원)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에 진출할 길이 열렸다. 한국은 AIIB의 3대 또는 4대 주주가 되고 AIIB 사무국은 중국 베이징(北京)에 설치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을 두고 한국이 지난해 하반기에 일찌감치 AIIB 참여를 결정했다면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도 결정을 미루다가 경제적 손해를 봤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중국과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2대 주주 자리 놓친 한국

AIIB를 주도하는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입장은 지난해와 올해에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에 중국은 한국 정부에 5000억∼7000억 원대의 막대한 자본금을 내면서 투자 관련 결정권이 없는 ‘비상임 이사’ 자격으로 참여해 달라는 제안서를 보냈다. 일본이 AIIB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정된 상태에서 한국을 2대 주주로 끌어들여 AIIB를 국제적인 기구로 키우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한국 안팎에서는 한국이 거액의 출자만 하고 중국의 들러리를 서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정부는 이번에 가입 결정을 내리면서 이런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된 것으로 판단했다. 최근 정부 내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들이 AIIB에 가입 방침을 밝히면서 중국을 견제할 장치가 마련됐다는 시각이 힘을 얻었다. 유럽 강대국들의 입김이 세지면 미국이 그동안 한국 등 동맹국의 AIIB 가입에 반대해온 문제점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가 전격적으로 AIIB 참여를 결정한 데에는 이런 분위기가 강하게 반영됐다.

하지만 2대 주주와 3, 4대 주주의 영향력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입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 이어 AIIB의 2대 주주로 참여해 부총재 자리를 얻는다면 그만큼 경제적 효과 등이 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AIIB의 2대 주주 자리는 인도, 호주 등이 차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 806조 시장 초기 진출에 의미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시설 투자수요는 2020년까지 매년 7300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이 AIIB에 창립회원국으로 가입하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SOC 건설사업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용이 늘고 경제성장률도 높아질 수 있다.

한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돈독해질 수 있다는 점도 AIIB 참여를 계기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다. 게다가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AIIB에 참여하면 북한 지역 개발에 한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또 기존의 ADB가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이 주도하는 체제여서 한국의 입지가 크지 않았던 반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러시아, 몽골 등이 회원국이 되는 AIIB에서 한국 기업들은 AIIB 추진 건설, 토목사업 등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결정이 가능했던 데에는 최근 미국의 태도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주도하는 AIIB의 경영구조를 문제삼아 왔다. 경영구조의 핵심인 이사회가 상근이사를 둔 상임체제가 아니라 ‘비상임체제’여서 중국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국제기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과 유럽 강대국들이 대거 AIIB 회원국으로 참여하면 중국이 의사결정 과정을 완전히 장악하기 어렵게 되고 미국도 동맹국들의 가입을 무조건 반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각국이 지분에 따라 선임한 이사들이 중국의 무리한 투자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당국자는 “AIIB 참여를 계기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제적 지위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한국의 금융외교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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