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게… 깔끔하게… 두 정치인의 아름다운 퇴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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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때처럼… 28년된 자가용 몰고 집으로

■ 우루과이 무히카 대통령 퇴임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불리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80·사진)이 1일 퇴임했다.

이날 무히카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손수 몰고 대통령궁을 떠났다. 대통령에 당선됐던 5년 전에도 그는 이 차를 직접 몰고 출근했다. 거리엔 많은 시민들이 나와 “굿바이, 페페(할아버지)”를 외치며 떠나는 대통령을 배웅했다.

무히카 대통령은 재임 내내 실제로 ‘친근한 페페’의 삶을 살았다.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그의 자택은 검소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집은 거실과 방, 부엌이 1개씩밖에 없는 허름한 농가로 대통령의 자택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직원 42명이 관리해 오던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해변 휴양도시에 있던 대통령 별장을 팔아버렸다. 자신은 농가에서 직접 낡은 비틀을 몰고 출퇴근했다. 집엔 가정부도 없어 집수리와 가사노동을 직접 했다. 대통령이 된 뒤 달라진 것이라면 경호를 위해 경찰 2명이 인근에서 대기했다는 것뿐이었다.

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당시 자신의 재산으로 1800달러(약 190만 원)를 신고했다. 낡은 승용차가 사실상 전부였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월급 1만2000달러(약 1300만 원) 가운데 90% 이상을 자신이 속한 정당과 사회단체, 서민주택 건설 사업 등에 기부했다.

그가 살고 있는 농가와 인근 농지는 부인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상원의원의 소유다. 땅과 승용차, 농기계 등 부부의 자산을 다 합쳐도 20만 달러(약 2억2000만 원) 남짓이다. 무히카 대통령은 지난해 아랍의 한 부호로부터 28년 된 낡은 폴크스바겐 비틀을 100만 달러(약 11억 원)에 사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무히카 대통령은 사고로 다리를 하나 잃어 운신이 불편한 자신의 애견이 그 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팔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무히카 대통령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갖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자신의 인생관을 밝혔다. 자신의 검소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고 놀라워하는데, 그런 관점이 오히려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은 그를 열렬하게 지지한다. 물러나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65%에 이른다. 당선 당시 지지율 52%를 뛰어넘는 수치다. 이런 지지율의 밑바탕엔 비단 그의 검소한 모습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주말에 농사를 짓고, 태풍이 오면 동네 이웃의 집을 고쳐주기 위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재임 기간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무히카 대통령은 1960, 70년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좌익 무장 게릴라 조직 ‘투파마로스’에서 활동했다. 1971년 그는 경찰 2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자신도 6곳이나 총상을 입은 채 체포돼 14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게릴라 동료였던 지금의 부인도 수감 시절 만나 동거해오다 2005년 결혼했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다.

한편 1일 몬테비데오 시내에서 주목을 받은 사람은 무히카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타바레 바스케스 신임 대통령(75)도 1951년에 생산된 포드슨 자동차를 개조해 판자로 두 사람이 겨우 설 만한 적재함을 만든 뒤 수도를 돌며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 차는 그가 젊은 시절 의사로 일할 때 처음 구입했던 차라고 한다. 바스케스 신임 대통령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무히카 대통령의 전임이자 후임이 되는 셈이다. 두 대통령이 보여준 도덕성과 검소함은 왜 국민이 이들을 좋아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우루과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6000달러 이상으로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이다. 또 지난해 발표된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 순위에서 세계 21위에 오르는 등 남미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이기도 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선거자금 모으는 데 시간낭비 하느니… 봉사로 40년 정치인생 마무리”

■ 여성 최장수 美의원 미컬스키

“선거 치르려고 또 정치자금 모으는 데 시간을 쓰라고? 그냥 남은 기간 지역 유권자에게 봉사하고 마무리하겠다.”

2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의 한 호텔.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 가장 오랜 기간 연방 의원을 지내고 있는 민주당 바버라 미컬스키 상원의원(79·메릴랜드·사진)이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한 말이다. 38년 전인 1977년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입성한 뒤 1986년부터는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으로 내리 5선을 지내고 있는 그가 돌연 2016년 중간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회견 참석자들은 술렁였고, 일부는 눈물까지 보였지만 이내 미 정치권 대표적인 여걸의 결단에 박수로 화답했다.

고령이지만 지난해까지 상원의 알짜 상임위원회인 세출위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을 보였던 그는 2016년 선거에서 6선 고지가 유력했다. 지난해 메릴랜드 주 가우처칼리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50%의 지지율을 기록했을 정도. 그런 그가 밝힌 불출마 이유는 솔직하면서도 울림이 컸다.

“내년 선거에 출마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결국 시간을 어떻게 쓸지의 문제였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상원의원이란) 내 직업을 위해 시간을 쓸 것이냐, 아니면 유권자들을 보호하는 데 쓸 것이냐. 결론은 다음 세대를 위해 남은 시간을 쓰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메릴랜드 유권자 여러분, 걱정하지 마라. 남은 기간 내 힘의 120%를 여러분에게 바친 뒤 떠나겠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등 미 현지 언론은 미컬스키 의원이 천문학적 규모의 선거 자금 조달에 한계를 느낀 현실적 이유 때문에 불출마를 선언한 측면이 있지만 자신의 정치적 업적이 빛을 바래기 전에 현명하고 아름다운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컬스키 의원이 보여 준 업적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우루과이#호세 무히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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