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은퇴 이후? 난, 희망 찾아 볼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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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무라카미 류 지음·윤성원 옮김/376쪽·1만2800원·북로드

“정년이라는 게 미리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 인생의 반을 훌쩍 넘긴 시점에 다들 처음으로 정년이라는 것을 맞이하는 셈이지. 그것도 말이야, 이런 무기력한 시절은 일찍이 없었다고. 옛날에는 분명 가난했고 돈이나 물건도 없기는 했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했지 쇠퇴해 가지는 않았으니까.”(180쪽)

소설 ‘캠핑카’에 등장하는 은퇴한 세일즈맨의 대사에 단편집의 주제가 함축돼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색소폰 소리 들으며’ 낭만을 운운하던 중장년의 좋았던 사춘기 시절은 일본도 한국도 끝난 지 오래다. 저자는 예민한 더듬이로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중장년 5명의 삶을 포착해 5편의 중편소설로 풀었다.

‘캠핑카’에선 중견 가구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자 조기 퇴직을 택한 남자 도미히로가 등장한다. 그는 캠핑카를 사서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아내는 은행 잔액과 자녀의 결혼 자금을 이유로 남편의 계획에 반대한다. 자녀는 한술 더 떠 재취업을 권한다. 재취업 시장에 나온 그에게 닥친 현실은 더 가혹하다. 컴퓨터와 외국어를 할 줄 아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특기로 신뢰와 노력밖에 답할 수 없는 그에게 자리는 없다. 그는 초조, 불안 증세에 시달린다.

책에는 TV만 보는 남편과 이혼하고 사랑을 찾아 나선 여자(‘결혼상담소’), 노숙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남편 대신 반려견에게 의지하는 여자(‘펫로스’), 악조건 속에서도 일에 긍지를 가지려는 트럭운전사(‘여행 도우미’)까지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서도 재출발하려고 애쓰는 중장년이 등장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그룹섹스, 연쇄살인, 영아유기, 폭력 등 자극적인 소재로 현대 사회를 그려냈다. 63세인 저자도 나이 때문인지 이번엔 착한 소설을 썼다.

작가의 말에선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공감을 느꼈다”는 고백까지 했다. 5편의 소설은 저마다 희망의 빛을 비추며 끝나는데, 저자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아 애틋하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55세부터 헬로라이프#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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