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먹칠’한 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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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연예인, 광고주에 잇단 배상 판결… 계약서 ‘품위 유지 의무’ 조항이 족쇄로

개그맨 이수근 씨(40)가 광고주에게 7억 원을 물어주게 됐다. 이 씨는 2013년 2억5000만 원에 자동차용품 업체와 광고 계약을 했다. 하지만 이 씨가 ‘맞대기 도박’ 혐의로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자, 회사 측은 이 씨를 상대로 “광고 효과를 잃었다”며 2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한숙희)는 “이 씨는 광고주에게 7억 원을 배상하라”며 강제조정 결정을 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씨는 이 돈을 갚기 위해 자신의 집과 차 등을 모두 팔아야 할 처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이승연 씨(47)도 최근 비슷한 이유로 광고주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자 광고주가 “브랜드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계약을 어겼다”며 낸 소송에서 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구설에 오른 연예인들에게 법원이 잇따라 광고주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계약서상 ‘품위유지 의무’ 조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인기 걸그룹 ‘카라’도 지난해 4월 소속사와 전속계약 효력을 둘러싸고 일어난 분쟁과 관련해 광고주가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근 방송인 클라라(29)는 소속사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과 관련해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광고주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모델로부터 협박을 당한 사건에 휘말린 배우 이병헌 씨도 누리꾼들이 ‘물의 연예인 퇴출’ 서명을 벌이자 광고주는 고민 끝에 이 씨가 출연한 광고를 잠정 중단했다.

품위유지 의무조항은 한마디로 양측이 사고파는 서로의 ‘이미지’가 온전할 수 있도록 맺는 약속이다. 계약마다 문구는 조금씩 다르지만 ‘광고 모델은 광고주나 제품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가 반영된다. 이 때문에 광고 계약 분쟁의 뇌관인 동시에 재판부가 책임 소재와 배상액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서울대 법학과 김재형 교수는 “광고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과 모델의 사생활 및 행동의 자유가 충돌할 위험이 있을 때 품위유지 의무 약정이 계약서에 기재돼 있는지 여부는 핵심적인 ‘계약서상 분쟁 해결의 지침’이 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품위유지 의무 조항이 존재한다면 유사시 광고주가 감내하게 될 불이익을 광고 모델이 부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반면 연예인 입장에서는 이 조항 때문에 자신의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불만이 많다. 명백한 위법 행위가 없었는데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 일까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계약 시 품위유지 의무 조항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때’와 같은 모호한 표현보다는 위반 사항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정하는 것이 분쟁을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연예인#광고#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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