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조문 온 김기남, MB만나 “장군님이 만나고 싶어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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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회고록]남북 정상회담 물밑교섭
임태희, 2009년 北과 싱가포르 접촉… 北 쌀-비료 대규모 지원 요구해 결렬
천안함 폭침 뒤에도 北인사 서울 방문
MB, 예방요구 거절… 2011년 처형돼

북한은 이명박 정부 시절 다양한 채널로 먼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며 대가 지불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처음 접촉을 요구한 것은 2009년 8월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을 파견했을 때였다. 조문단장인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가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통해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북한 조문단은 예방 요청 하루 뒤 일반 방문객과 같은 검색 절차를 거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비서는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북남 수뇌들이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이 만나 북핵 문제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만 강조하고 돌려보냈다. 닷새 뒤(8월 28일) 북한의 대남 문제를 담당하는 통일전선부장이 통일부 장관 앞으로 메시지를 보내 ‘남북 정상회담을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쌀, 비료 등 경제지원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해 진전이 없었다.

다음 접촉은 10월 싱가포르에서 이뤄졌다.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이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의제에 포함하고 대가성 지원은 없다는 것을 정상회담 조건으로 정했다. 하지만 북한은 △남북한 비핵화 공동 노력 △국군포로 1, 2명 고향 방문(영구 귀환 아님) △대규모 경제지원 등으로 답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11월 개성에서 이어진 통일부-통전부 실무회담에서 북한은 옥수수 10만 t, 쌀 40만 t, 비료 30만 t, 아스팔트용 피치 1억 달러어치, 북한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등을 제공받기로 싱가포르에서 합의했다고 주장하며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임 전 장관이 “논의 내용을 적었던 것에 불과하며 합의문이 아니다”고 부인하면서 이 접촉도 결렬됐다.

2010년 3월 30일, 침몰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중간 지점에 위치한 독도함에서 브리핑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2010년 3월 30일, 침몰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중간 지점에 위치한 독도함에서 브리핑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북한은 천안함 폭침(2010년 3월)에 따른 대북제재(5·24조치)가 발표되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6월에도 국가안전보위부 고위 인사 명의로 ‘국가정보원과 접촉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2010년 7월 국정원 고위 인사가 방북했다. 회고록에 실명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김숙 당시 국정원 1차장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대해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 유감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사과를 얼버무리려 했다. 천안함 폭침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자 북한은 쌀 50만 t 지원을 요구했다. 그해 12월 5일 북측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해 이 전 대통령 예방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이 인사가 2011년 초에 공개 처형됐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대북 소식통은 그가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라고 설명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이명박#회고록#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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