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사람만 초대” 멤버십 식당 주메뉴는 인적 네트워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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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혁신비즈니스, 현장을 가다]<下>파티 문화도 아이템

밥도 먹고, 인맥도 쌓고 놀고 먹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단순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특별한 네트워크’를 파는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선 ‘중요한 거래는 조용한 회의실이 아닌 시끄러운 클럽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12월 뉴욕의 한 유명 정치인 송년파티가 열린 연회장에서 초대된 유력 인사들이 함께 춤추며 친분을 나누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밥도 먹고, 인맥도 쌓고 놀고 먹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단순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특별한 네트워크’를 파는 비즈니스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선 ‘중요한 거래는 조용한 회의실이 아닌 시끄러운 클럽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12월 뉴욕의 한 유명 정치인 송년파티가 열린 연회장에서 초대된 유력 인사들이 함께 춤추며 친분을 나누고 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놀고먹는 관광 산업이야말로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세계 문화의 중심 미국 뉴욕 시에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가장 앞서는 사람들이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아이템으로 골목 상권 혁신을 이끄는 모세혈관들이다. 이들이 파는 것은 음식도 서비스도 아닌 네트워크. 대표적인 사례가 ‘멤버십 식당’이다.

6일 낮 뉴욕 맨해튼 남쪽 9번가 ‘소호 하우스’ 클럽. 클럽 멤버인 패션업계 인사가 점심 초대를 해 찾아갔다. 아무 간판도 없어서 길을 헤매다 간신히 건물을 찾았다.

1층 로비는 오피스텔 같아서 ‘어디 식당이 있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리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한눈에도 ‘모델’같이 늘씬한 20대 남녀들이 라운지 같은 공간에서 노트북PC를 펴놓고 뭔가 일을 하고 있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옆 식당은 만원이었다. 직원이 다가오더니 “라운지와 식당에선 전화 통화를 할 수 없고, 사진도 찍을 수 없다”는 주의사항부터 일렀다.

소호 하우스는 패션, 광고, 영화 등 문화예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회원으로 받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내건 표어가 ‘창조적 영혼(Creative Soul)들의 공동체’. 입회 심사에만 3개월∼1년이 걸리고, 연간 멤버십 비용만 평균 3000달러(약 324만 원)가 넘지만 지원자가 넘쳐난다고 한다.

6개월을 기다려 최근 멤버가 되었다는 영화 조감독 크리스틴 보널 씨는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멤버십 심사를 통과하고, 그만큼 쿨한 사람들 그룹에 들어갔다는 의미여서 정말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음식 맛은 특별하지 않았고, 가격 역시 비싸지 않았다. 이곳은 ‘특별한 당신만 올 수 있다’는 느낌을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내놓은 것 같았다.

광고 디자이너 마크 실버 씨는 “일반인과 관광객이 없어서 너무 좋다”며 “중요한 비즈니스 고객과 긴밀한 대화를 나눌 때 이 클럽 식당을 많이 이용하는데 상대방도 ‘당신 덕분에 특별한 곳에 와 봐서 좋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태식 KOTRA 북미지역본부장은 “맨해튼에만 이런 멤버십 식당이 30곳 이상 성업 중이라고 한다”며 “비즈니스 파트너의 마음을 사로잡고 실질적으로 사업에도 기여해 한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식당은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킹’과 ‘당신만 선택받았다’는 ‘배타적 접근성’을 팔고 있었다.

이런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네트워크 마케팅과 함께 취미와 관심사가 같은 동호인 클럽을 집중 겨냥한 식당들도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시티의 한 창고형 대형 연회장에서 열린 이 지역의 민주당 조지프 크롤리 연방 하원의원 송년 파티 현장은 마치 나이트클럽 같았다. 당 원내수석부총무이고 미래의 당 대표감으로 거론되는 8선의 의원은 2시간 내내 전자기타를 메고 반주를 하거나 흥을 돋우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한 해 동안 그를 도와준 후원자와 뉴욕 지역의 각계 유력인사 등 총 1000여 명이 초대됐다.

한 참석자는 “뉴욕의 파워하우스(유력집단)가 거의 다 모인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인적 교류와 조용한 비즈니스(딜)를 함께하고 있었다. 몇몇 참석자들은 기자에게 “이렇게 시끄러운 파티에서야말로 도청이 안 되기 때문에 민감한 얘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인 로돌포 플로레스 씨는 “요즘 월가의 중요한 거래는 회의실이 아니라 연회장에서 한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먹고 노는 비즈니스가 다른 산업 간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시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뉴요커인 스티브 파워 씨는 “21클럽, 포시즌 등 젊은이들이 밤에 많이 찾는 나이트클럽을 단순히 유흥의 공간으로 인식하면 안 된다. 적극적으로 인맥을 쌓고, 새로운 기회를 찾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페셔널(전문가 그룹)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재미를 겨냥한 미국의 혁신 비즈니스는 온라인을 빼놓을 수 없다. 제일 활발한 분야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이다.

중국에서 고교 시절을 보낸 뒤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중국인 K 씨(23)는 ‘딜리버리닷컴(Delivery.com)’ 배달 서비스의 애용자이다. 인터넷을 통해 메뉴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데다 주류나 슈퍼에서 파는 잡화도 살 수 있고, 세탁 및 수선 서비스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모바일 시장 분석업체 아심코 보고서는 애플의 앱스토어 경제 규모가 미국 할리우드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호러스 데디우 애널리스트는 “애플 앱스토어뿐 아니라 구글 안드로이드 앱, 광고, 서비스 비즈니스까지 합치면 전체 앱 경제는 할리우드 규모보다 더 클 것”이라며 “지난해 애플 앱 개발자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100억 달러(약 10조 원)였다”고 밝혔다. 이는 할리우드의 미국 박스오피스 수입 100억 달러와 맞먹는 액수다. 아심코 분석에 따르면 애플 앱스토어는 지난해 미국에서만 62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할리우드는 37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그쳤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미국#파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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