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거리 확대 속 지자체들 ‘흡연부스’ 잇따라 설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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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 피해막는 ‘해방 공간’? 금연정책 역행하는 ‘이상한 방’?
“금연홍보 장소로도 활용 가능” 주장에 “관리부실땐 도심속 흉물 전락” 지적도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하라고 담뱃값까지 올리면서 도대체 ‘흡연부스’는 왜 설치하는 겁니까?”

24일 오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앞.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에 하얀색으로 테두리를 칠한 구조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로 4m, 세로 2.6m, 높이 3m로 컨테이너와 비슷했다. 모양만 놓고 보면 마치 관광정보 안내센터를 연상케 하지만 이곳은 담배를 피우는 전용공간이다. 지난해 12월 말 광진구가 서울지역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만든 흡연부스다.

별도의 이름도 붙었다. 광진구는 타인을 배려하고 이롭게 한다는 뜻을 담아 ‘타이소(TAISO)’라는 간판을 달았다. 안에는 재떨이를 놓았고 여름에 대비해 미리 에어컨도 설치했다. 담배연기는 천장 환풍기를 거쳐 정화된 뒤 외부로 배출된다. 타이소는 비흡연자들의 간접흡연 노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설치됐다. 물론 올해부터 음식점과 카페 등 대부분의 실내공간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애연가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다.

흡연자들은 “눈치 안 보고 담배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며 반겼다. 그러나 비흡연자들은 “정부의 금연 정책에 역행할 뿐 아니라 관리에 소홀하면 흉물이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 너도나도 흡연부스 설치 추진

광진구는 동서울터미널역 앞에도 흡연부스를 운영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많게는 하루 3000명이 이곳을 찾는다”며 “자체 설문조사 결과 비흡연자의 99%(88명)가 ‘부스 덕에 간접흡연 피해가 줄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광진구는 5, 7호선 군자역과 세종대 인근에도 추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부스를 이용하는 흡연자 하진수 씨(20)는 “그동안 골목이나 거리를 걸으며 담배를 피웠는데 이젠 눈치 안 보고 흡연할 수 있다”며 “부스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 7, 8번 출구 앞은 서울 도심 속 대표적인 ‘너구리굴’ 가운데 하나다. 바로 옆 남대문로가 금연거리로 지정되면서 밀려난 흡연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간접흡연 민원이 빗발치자 중구는 다음 달 심의를 거쳐 흡연부스를 설치할 계획이다. 근처 대형 건물주가 설치비와 관리를 지원하기로 해 별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는다.

흡연부스가 번화가에만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인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 인수로도 조만간 금연거리로 지정되고 동시에 흡연부스도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성북구의회 조민국 의원은 “주민들의 거리 간접흡연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단순히 담배 피우는 곳이 아니라 ‘금연홍보 장소’로도 활용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 금연정책 ‘오락가락’ 비판도 많아

흡연부스 확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많다.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하면서 흡연 장려책을 동시에 펼치는 ‘엇박자’ 행정이라는 비판이다. 대학생 임영은 씨(21·여)는 “정부가 담뱃값 인상과 금연구역 확대 등을 시행 중인데 부스를 만들어주면 정책효과가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환기나 청소가 제대로 안 되면 ‘무용지물’로 전락하거나 자칫 ‘흉물’이 될 수 있다. 앞서 코레일이 2013년 말 서울역 앞에 만든 흡연부스는 이용자보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더 많이 눈에 띌 정도다.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직장인 윤모 씨(41)는 “사람이 조금만 늘어도 환기가 되지 않아 밖으로 나와서 피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흡연부스 설치를 검토 중인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흡연을 조장하기보다 비흡연자를 보호하자는 목적이 더 큰 만큼 유지관리 방안을 고민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장선희 sun10@donga.com·조영달 기자
#금연거리#흡연부스#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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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앞에 설치된 흡연부스 ‘타이소’(TAISO·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뜻)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광진구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곳과 건대입구역 근처에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광진구 제공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앞에 설치된 흡연부스 ‘타이소’(TAISO·타인을 이롭게 한다는 뜻)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광진구는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곳과 건대입구역 근처에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광진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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